교리는 눈이요、수행은 발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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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는 눈이요、수행은 발과 같다
  • 관리자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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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수행의 첫걸음

‘마음 한번 바꾸면 이 세상이 극락’이라 하고, ‘깨달으면 바로 부처’라고 쉽게 말하고 있다. 도대체 이 말을 어떻게 현실화, 생활화시켜 우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극락이 바로 지금 여기,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괴로움을 겪는다면 그 앎은 이론일 뿐,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 이론을 나 자신의 현실로 만드는 것이 수행이다. 나는 원래 화학을 전공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화학과 조교로 남았지만 그 자리에 오래 있지는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반대와 눈총을 무릅쓰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학사 편입했다. 학부와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나는 강의와 저술 작업에 심취하면서 그 속에서 정신적 자유를 찾으려 애썼다.

일본에서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무슨 일이든 10년을 하면 그저 조금 알 것 같고, 20년을 하면 전체적으로 파악이 되고, 30년을 하면 비로소 그 일에 대해 자신할 수 있다고. 그 동안 30년이 흘렀고, 나는 불교 교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 자유는 오히려 더 멀리 있는 듯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많은 굴레에 매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강단에서 오랫동안 불교를 가르쳐 오면서 불교는 머리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행하는 것이라고 늘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가르치는 나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남들이 화낼 때 똑같이 화내고, 남들이 심하게 대하면 똑같이 맞대응했다. 교리와 이론을 통해 괴로움의 원인과 대자유를 얻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남에게 설명도 명쾌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여전히 괴롭고 자유롭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불교 교리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렇게 가다간 평생 입만 살아있는 덜된 학자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교직을 떠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결국 불교 수행자들이 흔히 말하는 ‘출가할 때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고 마음을 정하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변명하는 자체가 핑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교수직을 그만 두고 남해안 국립해상 공원에 위치한 오곡도의 조그만 폐교를 인수하여 수행처로 바꾸었다.

아는 사람들이 밖에서도 수행하고 가르칠 수 있는데 왜 그 먼 섬까지 들어갔느냐고 물어왔다. 웃으며 대답했다. “먹는 사과를 아시지요? 사과의 성분이나 모양은 이론으로 배워서 설명할 수 있지만, 사과 맛은 각자가 먹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사과에 대한 이론은 잘 알았고 설명도 잘 했습니다만, 정작 먹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사과를 직접 먹어보고 싶습니다.”

얼마 후, 세계의 유명 수행처를 방문해 그 곳에서 장기간 머물며 수행했다. 일본 임제종 대본산에서 선(禪)을 수행했고, 미얀마를 방문해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있는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에서 수행했고, 스위스 브베에 있는 티벳 사원 랍땐 최링의 문을 두드렸다.

지금은 돌아와 오곡도에 머물며 수행하고 있다. 정적 속에 법당에 앉아 좌선하고 있노라면, 그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여기 도착하는 데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수행을 하면, 보잘 것 없는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고, 툭하면 다투던 주변 사람들과도 웃고 지낼 수 있으며, 비록 가진 것이 없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좀더 거창하게 말하면, 살아가면서 겪는 숱한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걸림 없는 대자유를 얻게 된다. 교리와 이론을 온 몸과 마음에 스며들게 하여 진정한 안락과 자유를 얻는 것이 수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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