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생생 보현행자의 길을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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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생생 보현행자의 길을 가리라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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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연 이야기

오늘날 많은 이들은 세상의 바깥쪽(명예, 권력, 돈, 여자 등)에만 모든 것을 걸고 신경을 쓰다가 스스로의 존재실상을 못 깨닫고 한 생이 끝나 버린다. 마치 자동차의 키를 차 안에다 두고 차문을 잠근 꼴이다.

불교와의 인연

나는 모태신앙으로 불교를 만났다. 불심이 깊으셨던 어머님은 나의 고향인 강릉 시내에서 정남쪽으로 약 이십여 리 떨어져 있는 법왕사에서 백일 치성을 드리고 나를 잉태하셨단다. 그리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나의 생가 길 바로 건너에는 오대산 월정사의 포교당인 관음사가 있었다. 나는 그 절의 부설 유치원에 다녔으며 절마당은 어린시절 놀이터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불교학생회에 들어가 여러 학교 교우들과 벗하며 즐겁게 지냈다. 당시 불교학생회 회장이던 전보삼 군은 현재 신구대학 철학과 교수이며 수년 전 사재를 털어 남한산성 한켠에 만해 기념관을 짓고 만해사상을 천하에 선양하고 있다.

결혼이야기

그 후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새로운 도시 환경에 접하면서 불교와는 멀어졌다. 입학하자마자 사귀게 된 같은 과 동기였던 먼저의 아내와 4년간 캠퍼스 커플로 12년간은 인생의 반려자로 함께 했으나 1984년 청천벽력 같은 암선고를 받고 2년 여를 투병하다 4월의 어느 날 아내는 사바의 인연을 뒤로한 채 이 땅을 떠났다. 당시 아내의 나이는 서른다섯. 그 동안 아이 셋을 두고 별 어려움이 없었던 나에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불광과의 인연

이제부터는 불광사 불광법회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암 선고를 받고 당시 서초법등 마하보살 명여심 보살의 인도로 잠실의 불광사에 다니게 되었던 아내는 투병생활 2년 여 동안 병원치료는 물론 기도와 정진을 열심히 하였으나 전생의 업장과 시절인연 때문이었는지 결국은 이생에서의 고통과 번뇌를 놓고야 말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참인지 거짓인지 억장이 막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가운데 한 생각 떠오르는 것은 아내의 명복이나마 열심히 빌어야 하는 것이 못난 나의 몫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날 이후부터 건성으로 아내를 따라 다녔던 사이비 불자의 너울을 벗고자 내 딴에는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했다. 당시 광덕 큰스님께서 설법하시는 법문 내용은 생의 백척간두에 섰던 내게는 감로수요, 지혜의 묘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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