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님! 나 여거서 죽어도 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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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님! 나 여거서 죽어도 되지라?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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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 이야기

지난 오월, 새들이 노래하고 토끼가 뒹구는 이곳(정토마을)에 지족행 보살님이 오셨다. 보살님은 위암 말기로 복수가 차서 걸을 수가 없었다.

풍경이 처마 끝에서 땡그렁 땡그렁 울리고 있었다.

“시님! 참 좋소. 우메 내가 무슨 복일까여? 참말로 좋구마. 내는 마 부처님 도량에서 죽는 게 팽생 소원이였지라.”

칠십 노구에 깊은 병이 든 보살님이 스님들의 간호를 받고 무지무지 행복해 하신다.

“오메 내가 안 아프면 우리 시님들 옷 하나씩 만들어 드릴 터인디 우짠디야.”

말씀이 많으시다. 막내아들과 딸 손잡고 오신 당신을 기억한다.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께 지족행이라는 불명을 받고 30년을 꼬박 절집에서 삼보를 받들고 살아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뼈만 남은 사지에 불러온 복수가 고통스러워 보여 복수 뽑고 미음을 드리고 목욕시키고 기도해 드렸다.

“시님! 나 여거서 죽어도 되지라?”

“그럼요”

“아들들이 못 가게 하는대두 내가 와버렀지라. 시님이 계신다고 해서 여기 온께 서너달 더 살고픈디 어쩐디야. 진작에 서둘러 와야 하는 건디.”

휠체어 타시고 법당에 가서 맨바닥에 절을 하신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저는요 극락으로 갈 텐께 부처님 그리 알아쁘리소. 날 꼭 데리고 가야 허요. 부처님! 나무 아미타불!”

“아이구 못 일어나시네.”

간호사들이 난리났다.

“시님! 나 울매나 살 것소. 나 부처님한테로 갈 텐께 아무 걱정 없어라. 매느리들한테 쪼께 미안허요. 팽생 절에 다닌다므 우째 이런 몹쓸병이 들었을까 하고 부처님 영험이 떨어질까 말이여. 다 내 업인디. 그러지라 시님?”

오신 지 한 달, 가족들이 수시로 전화도 하고 전화도 받고 점점 육신이 무너져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중환자실로 옮겨 모셨다. 내가 들려주는 아미타 노래에 푹 잠기시는 지족행 보살님. 오는지 가는지 있는지 흔적없이, 소리 없이, 허드렛일 다하시며 염불수행하신 지족행 보살님.

“나는 사십구재 필요없어라. 바로 갈텐께. 그려두 자식들이 헌다믄 혀야제.”

며칠 못 가실 것 같아 딸에게 부탁드렸었다. 가시려고 할 때 갈아입힐 고운 옷 한 벌 사오라고 했더니 멋진 것으로 사오셨다.

“시님 나 갈려고 할 때 이 옷 입소?”

“예.”

“병원복 입고 가믄 쓰것소? 고운 것 입어야제.”

맞소 맞어, 성품 좋으신 보살님! 함께 조금 더 살고 싶은데 떠나려고 준비를 하시는 것 같다. 임종이 다가오면 지수화풍이 차례대로 무너진다. 임종의 예후를 보이기 시작하신다.

임종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 지어온 업력에 따라서 그리고 마지막 종착역에서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다가서는가에 따라서 죽음의 질이 천차만별이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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