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늘 당연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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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늘 당연한 듯이…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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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공부하는 재미

우리 한국 불교계에서 ‘마음 공부’를 이야기할 때면 ‘장좌불와(長坐不臥) 몇 십 년’을 일컫고, ‘어느 선방에서 몇 년을 살았다’, ‘수십 일 동안 잠 한 숨 자지 않는 용맹정진을 하며 화두를 참구하였다’는 이야기처럼 참선 수행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한 듯 여겨지고 있다. 참선지상주의라 해야 할까, 부처님께서 우리들이 가야 할 ‘길’로 제시해주신 여타의 수행방법은 마치 잘못된 것이라도 되는 양 배척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 또한 한때 선방에서 세월을 잊은 채 좌선에 몰두하느라 ‘장딴지가 곪아터지고, 행전을 묶었던 종아리에 벌레가 생겨날 정도로 오로지 화두 하나만을 붙잡고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그것만이 인생의 목표였고, 출가 수행자의 본분이라고 여겼다. 당장이라도 깨닫고 한 소식 해서 대장부 일대사의 승부에서 결판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가져 보았고, ‘참으로 출가하길 잘 하였구나’ 하는 자긍심과 만족감에 흠뻑 빠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출가 이력이 쌓여가면서, ‘출가정신’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나는 왜 출가를 하였는가?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널리 펼치고 있는가? 중생들의 제도를 제대로 돕고 있는가? 나 하나만의 편안함과 자기 만족감에 푹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나는 부처님의 길을 올바르게 가고 있는가?’ 등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랜 동안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하며 번민의 세월을 보내고 나서, 결국 출가 당시 초심자 시절의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오대산 월정사로 동진 출가하여 10대 어린 사미 시절에 지암(智庵) 노스님을 7년 가까이 모셨다. 그 때 노스님께 받은 유언(有言)·무언(無言)의 가르침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나하나 되짚어가기 시작하였다.

지암 노스님은 일찍이 일제 강점기에 종단 재건의 큰 원력을 품고 무(無)종단 시대를 마감하여 조계종을 설립하는 일에 앞장서서 오늘날의 대한불교 조계종의 초석을 굳게 다지신 분이다. 노스님은 서울 시내 중심가에 종단의 총본산인 조계사 대웅전을 건립하는 막중한 불사를 마무리한 이른바 사판(事判)의 대표적인 스님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한암(漢岩) 스님을 월정사 조실로 모시고, 이어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하여 흐트러져 가는 수행 풍토 복원을 뒷받침하는 일을 실천하셨던 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 노스님은 오늘날 흔히 행정승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로 바라보면 안 되는 분이었다. 그야말로 이(理)와 사(事)를 겸비한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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