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에 대한 명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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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에 대한 명상 1
  • 관리자
  • 승인 2007.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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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명상일기

어제 저녁까지 맑았던 하늘이 아침에 일어나니 온통 흰 눈으로 가득 메웠다. 정말로 펄펄 내린다.

서울에서 온 박 선생은 펄펄 내리는 눈을 보고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새하얀 눈이 내리고 내려서 온통 천지를 하얗게 만든다.

산도 들도 길도 집도 나무도 오직 백설의 잔치다. 지저분하던 쓰레기장도 온데간데 없이 하얗다. 전나무 숲에 내린 눈은 백설의 트리를 만들었고 가지에 쌓인 눈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눈꽃 축제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자연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드라마다. 누가 이 장면을 보고 즐거워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겠는가. 순백의 축제는 가슴 벅찬 감동의 물결 그 자체다.

아침부터 오던 눈이 점심이 지나도 그칠 줄 모른다. 펄펄 내리던 눈이 폭설로 변했다. 그냥 두면 차도 사람도 다니기가 불편해진다. 눈 치우는 가래로 하얗게 쌓이는 눈을 마당 끝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치워도 눈은 계속 내린다.

끝없이 내리는 눈을 치우는데 허리가 아파오고 어깨가 무겁고 팔이 아파온다. 발꿈치도 시리고 손끝도 시리다.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무겁고 팔이 아픈 일은 그냥 생기는 법이 없다. 이것도 일어날 이유가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다.

눈을 치우면서 일어나는 느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 20년 전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면서 겨울만 되면 눈치우기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 때는 눈치우면서 얼마나 힘들고 지겨웠던지 눈만 보면 신경질이 나고 짜증이 났었다. ‘저 놈의 눈이 또 오네.’ 하면서 말이다.

특히 눈 온 뒤에 사격장에서 사격을 못해서 눈밭을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하면서 ‘얼차리’(기합을 정신 즉, ‘얼’을 차리라는 의미로‘얼차리’라 했던 것으로 생각됨) 받던 일들은 끔찍했던 기억이다. 뿐만 아니라 팬티바람으로 눈 온 연병장을 돌거나 ‘차렷’ 자세로 서 있게 하는 것은 참으로 죽을 맛이었다.

지금은 민주화가 된 세상이니 어찌 변했는지? 당시의 군대는 상관 명령이라면 아무리 잘못된 일이라도 복종해야 했던 시절이다. 인간의 인권은 아예 말할 필요도 없고 옳은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우리네 힘없는 병사들은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돌아도 세월은 간다.” 하면서 자조적인 말을 내뱉곤 했었다. 참으로 상식이라는 것도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 무조건 하라면 해야 하는 시대였다.

20년 전 군 생활을 하면서 쌓였던 마음들이 허리와 어깨 등에 쌓여 있다가 눈 치우기를 하니까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인과란 참으로 한 치도 오차가 없다. 20년 전 군에서 있었던 마음들이 몸을 통해서 그대로 다시 드러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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