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백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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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백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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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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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15)

  일본 초대 승정 관륵(觀勒)

  백제의 관륵(觀勒) 스님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제30대 무왕(武王) 3년(602, 日本 推古 10년) 10월의 일이었다. 삼론(三論) 학자이기도 하였던 관륵스님이 불교를 전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면서, 역본(曆本)과 천문 · 지리서 및 둔갑 방술의 책(遁甲方術書)들을 가지고 갔다.

  그 때 일본은 성덕태자(聖德太子)가 섭정(攝政)을 하면서 불교의 국가이념(國家理念)에 입각하여 흥국(興國)의 정책을 펴고 있었다. 당시 여왕<推古女主>를 대신하여 일본을 다스리고 있던 성덕태자는 일찌기 고구려의 혜자(惠慈) 스님과 백제의 혜총(慧聰)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교이념의 정법치화(正法治化)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또 위덕왕(威德王) 44년(597, 推古5년)에 도일한 백제 임성태자(淋聖太子, 阿佐王子와 동일 인물로 26대 聖王의 셋째 아들로 전해져 있다)로부터 백제의 왕법(王法) 즉 정치제도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일본의 낡은 직제(職制)를 고쳐서 관위 12계(冠位十二階)를 제정하고, 의복(衣服)제도도 고쳤다는 것이다. <妙見社略緣起 등>

  그러한 성덕태자이므로 백제의 고승 관륵스님을 초청해 가서 불교 뿐만 아니라 제반문물(諸般文物)에 관해서 일깨움을 받고자 하였을 것으로 짐작되어 진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관륵스님이 천문, 지리 등의 서책을 가지고 가자, 곧 서너 사람의 학생을 뽑아서 배움을 받도록 하였다. 그 중에서 옥진(玉陳)이란 사람은 역법(曆法)을 배워 그 학업을 완성하였고, 대우촌주(大友村主) 고총(高聰)은 천문과 둔갑법에 통달하였으며, 산배신(山背臣) 일입(日立)은 방술(方術)을 배워 그 업을 이루었다고 한다.

  관륵스님은 주로 원흥사(元興寺, 고구려 慧慈와 백제 慧聰이 머물면서 聖德太子를 일깨웠던 法興寺)에 있으면서 성덕태자는 물론 일본의 승속(僧俗)을 깨우쳤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가 도일한지 꼭 20년째가 되는 622년(推古 30년)에 일본 섭정 성덕태자가 세상을 떠났다. 20세에 고모이면서 백모(伯母)인 추고(推古)여왕의 즉위와 더불어 섭정이 되었던 성덕태자는 30년 동안 일본 천하를 다스리다가 49세 되는 해에 생을 마쳤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백제 武王 25, 推古 32년, 624)에 관륵스님은 일본 교단의 최고책임자인 승정(僧正)이 되었다.

  그때 일본에는 불교를 받아 들인 지가 반 세기를 지났기 때문에 일본 자체내의 출가자들이 적지 않았다. 최초의 출가자는 여성으로서 선신니(善信尼) 등 세 비구니였으나, 남성들도 그 뒤에 다투어 출가하여 비구(比丘)의 수가 상당히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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