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법석] 36. 한암 대종사(1876 -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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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법석] 36. 한암 대종사(1876 - 1959)
  • 김충현
  • 승인 2007.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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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그 가운데 오묘함이 있도다

한국 불교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거봉들을 내어 스스로 이겨내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던 근대 불교를 온 몸으로 짊어지고, 오늘날까지 승가와 재가가 두루 지표로 삼을 가르침을 주고 홀연히 입적하신 분이 한암(漢巖) 대종사이다. 저물어가던 조선말 1876년 강원도 화천(華川)에서 태어난 한암 대종사는 9살 되던 해 이미 『사략(史略)』을 읽고 의심을 품을 정도였다. 21살 되던 해 금강산 장안사에서 행름(行凜) 화상을 은사로 득도했고, 29살 되던 해 통도사 내원선원(內院禪院)의 조실이 되었고, 45살 때에는 금강산 건봉사(乾鳳寺) 조실로 추대받았고, 1926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승가오칙(僧伽五則)’을 제정하고 선포하였다. 1.선(禪) 2. 염불(念佛) 3. 간경(看經) 4. 의식(儀式) 5. 수호가람(守護伽藍) 등 다섯 항목으로 되어 있다. 1951년 세수 75세, 법랍 54세로 좌탈입망(坐脫立亡)에 드시었다.

대종사께서 생전에 남긴 가르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오늘날 사부대중이 지표로 삼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번 호에서는 대종사께서 남기신 ‘선원규례(禪院規例)’와 선문답 21조 가운데 제 1조를 소개한다. 선문답 제 1조는 참선이 비단 출가 수행자뿐 아니라 뭇 생명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간결하게 가르친 것이다.

선원규례(禪院規例)

- 선원규례는 1922년 금강산 만일암에서 선원을 개설하고, 제정하신 것이다.

도를 배움에 학인이 대중과 함께 머물지 않으면 옥을 갈아 그릇을 만들기 어려움이요, 대중과 함께 머물진댄 규칙이 없다면 서로 권장하여 도를 배워 나아가기 어렵다. 서로 권장하여 배워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선가(禪家)에서 가장 다급하게 해야 할 일이다. 이에 몇 가지 규칙을 만들어 뒷날의 귀감을 삼고자 한다. 오직 바라는 일은 뜻을 같이하는 덕 높은 스님들은 이를 마음에 새겨 서로 서로가 권할 것이며,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지어다.

1. 옛부터 전해오는 총림의 청규에 맞게 수좌 두 사람을 두되, 덕이 높고 계행이 청정한 이로 대중의 모범이 되는 이를 마땅히 가려 맡겨야 한다. 만일 두 사람을 뽑지 못할 때에는 한 사람만을 두어도 된다. 만일 적당한 이가 없다면 굳이 숫자를 채우려 할 것 없이, 열중(悅衆: 선방 소임, 대중의 정진을 살피면서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봐주는 소임)만을 두어야 할 일이다.

1. 열중은 사리가 분명하고 상벌이 공정한 자로서 대중을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을 가려 맡겨야 한다. 만일 이 같은 사람이 없다면 나이가 많고 공부가 원숙한 사람으로 대중의 뜻을 잘 따르는 사람을 가려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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