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명상(話頭冥想)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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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명상(話頭冥想)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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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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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수행법38

▶선생님, 화두공부가 최상승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그러합니까?

혜봉 화두 자체에 상하가 없듯이 공부에도 상하가 없습니다.

▶혜능 스님께서 최상승법을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혜봉 물론 혜능 스님께서 최상승법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혜능 스님께서 말씀하신 최상승법은 생사를 여읜 자성을 깨닫는 법을 말씀하신 것이지 화두 공부법 자체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화두를 참구한다 해도 생사와 상관없는 본래의 성품을 깨닫는 화두가 아니면 화두 참구 자체가 오히려 병이 되어 업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하여 화두를 참구하는데 업을 지을 수 있는지요.

혜봉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한 제자가 운문 스님에게 ‘부처가 뭡니까?’ 하고 물었을 때 운문 스님은 간시궐(마른 똥 막대기)을 제자 앞에 턱 내밀었습니다. 이 때에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은 ‘아 마른 똥 막대기가 부처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생각이나 시비분별로 부처를 만드는 격이 되며, 이것이 곧 업을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두를 참구하되 ‘간시궐이 부처구나’ ‘잣나무가 부처구나’하고 생각하면 자성을 깨치기는 커녕 이를 버리지 않는 한은 깨달음의 길과도 영영 멀어집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운문 스님은 마른 똥막대기를 내밀었고 조주 스님은 뜰 앞에 잣나무를 가리켰습니까?

혜봉 바로 그 질문과 같이 ‘어찌하여 마른 똥 막대기를 내밀었는가’ 하고 참구해 가세요.

▶(또 한 사람의 공부인이 묻는다) 어떤 스님께서 위빠사나 수행법은 화두 공부보다 못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도 틀린 것입니까?

혜봉 맞다, 틀렸다 할 것이 못 됩니다. 왜냐하면 위빠사나 수행으로도 생사를 넘어선 참된 자기를 깨닫는다면 이것 또한 화두 공부와 마찬가지로 생사해탈의 길로 가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을 하다가도 화두 공부와 마찬가지로 공부 중에 망견을 만들어 망견에 빠지면 이것 또한 자성을 깨닫는 길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도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혜봉 사람에 따라서는 좋고 나쁨이 있겠지만 공부법 자체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기 옷이 하나 있습니다. (입은 옷을 집어 보인다) 이것은 제가 입은 옷인데 이 옷은 제 몸에 잘 맞습니다. 그러나 몸집이 좀 더 큰 사람은 이 옷이 작아서 입을 수가 없습니다. 또 몸집이 저보다도 작은 사람은 입을 수는 있으나 입어도 볼품이 없고 편치 않습니다.

이와 같이 옷 자체에는 맞다, 틀리다, 좋다, 좋지 않다 하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 크다, 작다, 맞다, 맞지 않다, 좋다, 좋지 않다 하는 일이 생길 뿐 그 자체에는 그 어떤 것도 고정된 법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똑같은 칼이라도 살인 강도가 들면 살인검이며 보살이 들면 중생을 제도하는 활인검이 됩니다. 말하자면 똑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거리의 도적놈이 말한 말이라도 깨달은 사람이 쓰면 법설이 되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말씀이라도 자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빌려다 쓰면 마설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교회도 다니시고 절에도 다니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예수님과 부처님 중에 어느 분이 더 훌륭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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