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터미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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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터미널에서
  • 관리자
  • 승인 2007.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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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연이야기

대지를 녹일 듯한 폭염이 며칠째 계속되던 날이었다. 마침 여름휴가철이 한창이던 때여서 전국의 고속도로가 주차장을 방불할 만큼 몸살을 앓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시골에 꼭 가보아야 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고속버스터미널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정해진 시간에 떠나는 차는 드물고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만 갔다. 날씨는 덥고 떠나야 할 차는 오지 않고 그야말로 괴로운 상황이었는데 마침 한 초로의 어른에게 눈길이 가게 되었다. 그는 무언가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고 어느새 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넉넉한 풍채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얼큰한 취기가 감도는 얼굴이 조금은 상기되어 있었고 음성도 높았다.

그는 여름밤 참외밭에 가서 서리한 이야기로부터 어느 부잣집 닭장에 들어갔던 이야기까지 그저 그런 흔한 소재의 소시적 이야기들을 끝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입담에 빨려 들어가 마냥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의 무대도 따라서 커가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 닭 두 마리 목을 꼭 잡아채고 나오는데 그 기척에 눈치챈 머슴들이 방문을 확 열고 나오다가 서리꾼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오줌통에 빠져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여유 있게 부잣집을 빠져 나왔다는 이야기, 그 닭을 잡아 찹쌀을 넣고 푹 끓여 여러 친구들과 포식을 했다는 이야기를 마치 어제 밤에 있었던 일처럼 이야기하면서 그는 신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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