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잘 살 수 있는 힘, 사무량심(四無量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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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잘 살 수 있는 힘, 사무량심(四無量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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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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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사는 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얽혀 살 수밖에 없는 세상. 그 소란스러운 세상 속을 걸으면서 일찍이 세상 물정에 눈뜬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 세상을 장악하는 힘의 논리와 위력에 민감하다.

금력(金力)과 권력의 힘이 주도하는 세상 이치에 그들은 유달리 밝다. 그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기 이익 주장과 확보에 공격적이고, 이익 확보를 위해 필요할 때면 인정이나 의리에 과감히 냉정하려 한다.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이끄는 가장 강력하고도 확실한 요인은 금력과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이익이라고 확신하기에, 매사를 이익 계산의 원칙에서 파악하고 처리한다. 그들에게서는 명쾌한 현실적 안목과 단기간에 효력을 보는 강력한 해법이 돋보인다. 이른바 성악설적 인간형이다.

비록 비정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인생관을 쉽게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안목에는 결코 간과하지 못할 생생한 현실 감각이 빛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충실하고 예리한 인간 통찰이 있다. 그 통찰은 흔히 매우 효과적이고 그래서 견실해 보인다. 그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양심이 결핍되어 있을 것이라 말한다면 큰 실례요, 오해가 된다. 인간 세상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그들의 희원은 결코 손색이 없다. 살 만한 세상을 가꾸어 보려는 그들의 기원과 의지는 누구 못지 않게 순수하기도 하다.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 세상, 살만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매우 현실적인 인간관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적나라한 인간 현실을 직시해야 적절한 문제 해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말한다.

“신의·양심·자발적 윤리 능력 따위로 인간 현실을 포장해 보지 말자. 인간은 어차피 기회만 주어지면 자기 이익에 혈안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추하다며 경멸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차라리 사실대로 보자. 그래야 평화롭게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 제대로 보일진저!”

그들은 그래서 이익 계산의 길을 주목한다. 어쩔 수 없는 이기심의 주체들이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기심을 양보, 제어하게 만드는 과정과 장치 마련에 골몰한다. 그들은 이기심의 정화나 극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다툼을 조정하는 이기심의 합리화가 그들의 목표이다. 근대 이후 사회 운영의 주류 원리는 이러한 성악설적 안목에 입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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