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떠난 ‘나’ 바로 보고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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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떠난 ‘나’ 바로 보고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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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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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현상학적 지평에서 규명한 선’ 펴낸 최경호

현상학적 지평에서 규명한 선(禪)! 2년 반의 긴 작업 끝에 최경호는 자신의 선체험을 현상학적으로 규명해내는 일을 해냈다. 어린 시절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의 시작은 자연 철학과로 향하게 했고, 특히 E. 후설(Husserl, Edmund, 1859∼1938)의 현상학(現象學)은 그를 매료시켰다. 판단이나 추론 등을 개입시키지 않고 체험 속에서 대상을 직접적으로 인식, 직관하여 드러나는 곳에서 논리적 구조를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에 와 닿았다. 최경호는 나라는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실재가 스스로 내비치도록 하는 것, 즉 선험적 자아를 넘어서 있는 곳에서 작용하고 있는 마음을 따라가 보려 했다.

머리로 규명하기보다 체험을 중요시했던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은 결국 선(禪)으로 향하게 되었고, 현상학에 대한 관련 서적들을 번역하면서, 선(禪)의 생생한 실재감에 휘감기어 거기에서 일어나는 영감들을 시로 적어보기도 했다.

“선의 세계란 언어에 의해 포착되어지면 이미 그것은 죽어버린 실재이며, 언어 그 너머에 생생히 살아있는 실재이기에 궁극적으로 그것은 언어에 의해 포착되지 아니하고 몸에 의해 직접적으로 포착되는 우주의 생생한 흐름이다.

생동하는 지금, 여기의 흐름이기에 글로써 선의 세계를 표현하여 제시했을 때 이미 선을 잃고서 언어와 의식 속에서 걸러지는 선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그였지만 1990년 초부터 시작된 그의 선에 대한 관심과 그 체험을 기술해내고자 하는 열정은 해가 지날수록 식을 줄을 몰랐다.

그런데 97년 이맘 때였던가. 어느 순간 최경호는 절망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나의 것, 나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진정한 ‘나’가 아니었다. 현상학에 대한 관련서적들을 번역하면서 선적 체험을 추구하여 떠오른 영감들을 시로 적어 몇 권의 시집도 내봤지만 도대체가 자신의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이 아닌, 그저 그림자만 좇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 쓰기와 선적 체험 기술하기, 이 둘 밖에 없었는데 예민한 시적 언어감각의 결여,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시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했다. 동시에 자신이 모든 것을 던져 그렇게도 목마르게 갈구하던 깨달음이라는 것도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라는 절망감에 빠졌다.

‘아! 나는 정말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무 것도 없구나.’ 심장의 박동소리마저 서서히 일을 멈추고 늦춰지고 있음을 느꼈다. 사방을 둘러봐도 오로지 무료함뿐이었다. 전화도 TV도 없는 집에서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그저 반복했다. 몸과 두뇌는 무엇인가를 활동할 것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었지만 맥이 끊어진 상태에서 아무런 생각도 의지마저도 끊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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