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사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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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성사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 관리자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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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서로 인사가 끝난 다음,

 "대사께서 오시지 못하신다기에 이 청신녀(淸信女)가 뵈오러 가려 했더니 이렇게 왕림해주셔서 마냥 기쁘오이다."

 왕후는 자신이 청신녀라 미리 못을 박아서 원효를 스승으로 모신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청해주시어 황공할 따름입니다."

 왕후는 웃음을 지으며 좀 표정이 딱딱한 원효에게 말했다.

 "그렇게 어려워하실 것 없소. 오늘은 법문을 듣자옵는 것보다 대사를 시봉할 요석이 여기로 이사왔으니 정원도 구경하실 겸, 또 잠시 쉬시라고 청한 것이니 마음을 편히 하시오.

 요석 공주가 원효의 시봉을 맡는다는 얘기는 선왕의 사십구일재 때 이미 새 왕후가 밝힌 바 있지만 원효는 그것을 남의 일인 양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왕후는 그 일을 다짐이라도 하듯 대화의 벽두에 꺼내는 것이 아닌가?

 원효는 왕후가 마치 미인계를 쓰려는 것 같은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치고 가서 왕후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퍽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러한 상념은 극히 짧은 일순에 지나지 않았다.

 남의 호의를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점잖치 못한 짓인가를 그는 너무도 잘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하더니 안쪽에서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요석공주가 나왔다.

 공주는 원효에게 삼배를 드리고 공손히 꿇어 앉는다.

 이어 공주의 시녀 셋이 일제히 삼배를 올린다.

 원효는 공주와 시녀들의 예배에 잠잠히 앉아서 합장만 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계율을 일러주시기를

 "비구는 국왕에게는 예를 드리고 대신(大臣)이나 그 이하의 세속인에게는 답례하지 말아라."

 말하자면 국왕 이외의 세속인에게는 예배하지 말라 하신 것이다.

 그러나 비록 답례하지는 않더라고 거만스런 자세나 표정을 지어서는 안된다. 경건한 자세로 예배를 받되 삼보(三寶)에게 회향(回向)하는 것이 수행인의 떳떳한 자세인 것이다.

 원효는 공주와 시녀들의 절을 삼보에게 회향하였다. 아직은 부처님처럼 시방중생(十方衆生)의 예배를 받을 만큼 법력이 거룩하지 못하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는 터였기 때문이다.

 한 무릎은 꿇고 한 무릎은 세워 그 세운 무릎에 두손을 깍지 끼워 앉은 요석 공주는 무슨 인사말은커녕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다.

그러한 몸가짐이 매우 흡족한 듯 왕후는 눈에 웃음을 담아 바라보다가

 "공주는 이 궁의 주인으로서 큰스님께 감사하는 인사를 여쭈어야 하거늘….

 말은 나무라는 투였지만 실은 그저 공주에게 입을 열도록 하자는 뜻으로 하는 말이었다.

  공주는 어마마마의 말을 듣고는 귀밑이 더욱 후끈거림을 느끼며 고개를 더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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