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습(業習)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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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습(業習) 죽이기
  • 관리자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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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수많은 불자들이 2,000여 년을 넘게 아침 예불과 저녁 예불 때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 경전을 수없이 염송하고 또 염송하여 왔지 아니한가.

그리고 깨달음을 위한 정법(正法)을 만나기를 서원하여 왔고, 여래의 진실한 뜻을 알기를 서원하여 왔으며, 영생을 누리는 행복한 피안을 그리며 그곳에 이르기를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서원해 왔던가.

지금도 수많은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저마다 화두를 참구하여 수행을 하고 있고, 또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수행자들조차도 중생들에게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는 분들은 드문 듯싶다. 이것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정법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깨달음에 이르는 정법은 과연 있는 것인가? 있다면 어떻게 우리들의 마음을 항복받고 닦을 것인가?

필자가 체험을 통하여 얻은 방법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은 내가 죽고 죽어 하나의 티끌마저 없이 허공과 같이 되도록 업습(業習)을 닦지 아니하면 부처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처를 보는 자 참된 참회를 하여야 한다.

참된 참회는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참된 참회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은 내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업(業), 즉 기억된 상념체(想念體)를 생각으로 하나하나 꺼내 없애고, 내 몸 속에 깊게 스며 있는 무의식체제로 내재되어 있는 습(習)을 없애는 것이다. 습을 없애는 방법은 바로 습이 깃들어 있는 몸을 생각으로 죽여 없애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개체를 보존하기 위하여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 왔기 때문에 탐진치(貪瞋癡)의 온갖 죄업으로 쌓여 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이며 마귀의 존재이다. 본래의 우리의 몸과 마음은 법성(法性)으로 이루어 졌으나 이 법성이 죄업, 즉 기독교식 표현으로 말하면 마귀에 가리어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법성을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서는 죄업, 즉 마귀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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