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맑은 강물, 푸른 산, 싱싱한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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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맑은 강물, 푸른 산, 싱싱한 갯벌
  • 관리자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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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만 행

대설 주의보가 내린 지리산 실상사의 새벽, 극락전을 나와 무릎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산책을 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밭을 걷다 문득 돌아보니 나를 따라오는 것은 발자국뿐이었다.

그렇다. 내 발자국, 바로 저 발자국 속에 혹한의 겨울 하늘을 이불 삼아 걸어온 나의 수행길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그리고 산문을 박차고 나가 지리산 댐 건설을 막기 위해 지난 1년 가까이 동분서주 저자거리를 뛰어다닌 날들도 바로 저 발자국 속에 있다.

지난해 가을, 낙동강 1천 3백리 길에 한 발 한 발 힘겹게 찍어두고온 내 발자국도 오늘 저 눈밭 위의 발자국과 다르지 않으며, 새만금간척사업 저지를 위해 갯벌에 두고 온 발자국과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부패방지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합동기도를 위해 명동성당의 콘크리트 바닥에 두고온 내 발자국도 다르지 않다.

내게 있어 만행이란 환경운동, 생명운동을 위해 걸어온 이 발자국들의 총체일 뿐이다.

산문과 저자거리를 넘나들며 수행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내면적으로 많은 갈등이 생기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가면 갈수록 수행의 길과 생명운동의 길이 둘이 아니라 내딛는 발자국 속에 함께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민족의 영산이자 불교의 성지인 지리산에 댐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소식은 참으로 참기 어려운 고민거리였다. 수행생활 중에 여태껏 한번도 써보지 않고 입 밖에 내보지도 않은 ‘댐’이라는 말이 번갯불처럼 이마를 치며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나 몰라라 하고 산문에 기대어 가만히 있다가는 내 의식의 저 밑바닥까지 수몰될지 모른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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