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때로는 힘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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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때로는 힘이 되더라
  • 관리자
  • 승인 2007.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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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뜰/ 자비의 손길

추석과 함께 상륙한 태풍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갔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 속절없이 펼쳐지고 있다. 비록 일어설 수 없는 시련에 힘겨워 할지라도 비온 뒤에 개는 법이고,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러나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가혹한 삶의 늪에 빠져 어떠한 빛도 희망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번지수만 가지고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골목골목을 헤맨 끝에 최영자(56세) 씨의 집을 어렵사리 찾았다. 마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처럼 방에 가만히 누워 있는 최영자 씨를 형광 불빛만이 애처롭게 지켜주고 있었다.

최영자 씨는 현대의학의 힘으로는 불치인 ‘진행성 근이양증(筋異養症, Muscular Dystrophy)’이라는 희소한 병을 앓고 있는 1급 장애인이다. 이 병은 근육에 영양이 공급되지 못해 근육이 점점 위축되거나 무력해지면서 관절이 굳는 상태로 진행되어, 보행과 활동에 장애를 받게 되는 병이다. 최영자 씨는 차츰 차츰 전신에 힘이 없어지면서 보행 장애가 생기고 자주 넘어지고 계단을 오를 수 없게 되는 등 20년 동안 병의 증세가 조금씩 악화되어 걸을 수 없게 되고 결국엔 평생을 누워서 지내게 되었다.

병이 찾아들기 전, 최영자 씨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남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또한 꽤나 활동적이어서 작은 찻집을 경영하기도 했다. 모든 일이 순탄하기만 했던 장미빛 미래가 잿빛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편과의 이혼, 아이들과의 헤어짐을 뒤로 하고 장애인 그룹 홈으로 거처를 옮겼다. 앉은뱅이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을 보고 싶은 그리움이었다. 삶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지만 또한 이대로 주저앉아 죽음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가슴 속 상처를 어루만지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눈물겨운 싸움이었다. 몸은 비록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지만 마음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아픔과 그리움을 처절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시로 승화시켰다. 손을 가까스로 움직여 키보드를 쳤다. 그러나 끝없이 내뱉어지는 시어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마비된 손으로 하루 종일 워드에 입력한 글은 채 A4 한 장이 못 되었다. 그래도 시를 쓸 수 있는 것만으로 새로운 희망이 생기고 마음의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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