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보리심을 냅시다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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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보리심을 냅시다 Ⅲ
  • 관리자
  • 승인 2007.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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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대사권발보리심문

바람 (風 : 寒氣)과 불(火 : 熱氣)이 번갈아 가지고 볶으면, 그 가운데 우리 신식(神識 : 정신, 영혼)은 무너져 내려 어지러워지고, 정기(精氣)와 피(血)가 밭아 가면 피부와 살이 안팎에서 바싹 메말라 붙습니다. 그러면 어느 터럭 하나 바늘로 찌르는 듯하지 않음이 없고, 어느 구멍 하나 칼날로 도려내는 듯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거북이를 삶아 요리할 때 그 등가죽을 산 채로 벗기기는 오히려 쉬워도, 우리 수명이 다하여 죽을 때 그 신식(神識)이 몸을 떠나가기는 그보다 배 이상 훨씬 어렵답니다.

마음은 항상스런 주체가 없는지라, 장사꾼처럼 도처에 분주히 나돌아 다니고 ; 몸은 일정한 형상이 없는지라, 집이나 방처럼 빈번히 옮겨 다닙니다.

그래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우주)의 모든 티끌 수로도 우리가 그렇게 들락날락 옮겨다닌 몸을 다 헤아리기 어려우며, 사해(四海)의 바닷물로도 우리가 그렇게 헤어지면서 흘린 눈물을 도대체 셈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랗게 쌓인 뼈 무더기는 태산보다 훨씬 높고, 사방 천지에 온통 널려 있는 시체들은 대지(大地 : 흙)보다 훨씬 많습니다.

가령 우리가 애당초 부처님 말씀을 못 들었다면, 이러한 사실을 누가 보고 누가 들을 수 있으며; 또 부처님 경전을 보지 않았다면, 이러한 이치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여전히 탐욕에 연연하며 예전처럼 어리석음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직 천만겁의 생애가 지나도록 한 번 잘못이 천만 번 잘못으로 이어질까 두렵습니다.

사람 몸은 받기는 어려우면서도 잃기는 매우 쉬우며, 좋은 시절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려 뒤쫓을 수가 없습니다. 갈 길은 아득하고 어둑어둑한데, 이별은 끝도 없이 길기만 합니다.

삼악도(三惡道 : 지옥·아귀·축생)의 고통스런 과보가 자신에게 닥치면 스스로 받아야 하는데, 그토록 말할 수 없이 엄청난 고통을 누가 대신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말하는데도, 마음이 오싹 춥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까?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생사 윤회의 흐름을 끊어버리고 애욕(愛欲)의 바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남들을 다함께 건져내어 피안(彼岸 : 열반 언덕)에 나란히 올라가야 합니다.

시작도 없는 아득한 과거 이래로 가장 큰 특별한 공훈이 바로 이 한 가지 수행에 있습니다. 이것이 보리심을 내게 되는 여섯 번째 인연입니다.

일곱째, 자기 영혼을 존중함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현재 한 마음(一心)도 지금 있는 그대로 석가여래와 전혀 둘이 아니고 다름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석가 세존(世尊)께서는 무량겁(無量劫) 이래로 일찌감치 올바른 깨달음(正覺)을 이루셨으며,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뒤죽박죽 혼미(昏迷)를 거듭하는 평범한 중생 노릇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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