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원품의 법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부처님께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미진수로 계신 모든 부처님과 선지식께서 열반에 드시지 말고 영겁토록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여 주소서’하고 권청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열반이란 말의 원래 말뜻은 번뇌를 멸해 버린다는 것이요, 이것은 깨달음의 뜻과 같은 것이 아닌가? 사실 그러한 것이다.

깨달음에 의해서 생명의 본래 면목을 회복하고 보면, 그 자리에는 번뇌가 남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여는 것이 곧 열반에 드는 것이다.

그런데 범부들은 부처님의 색신이 사라지는 것을 열반에 드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우리에게서 모습을 없애 버리시면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없어지고, 우리에게 법을 설하실 설법주가 없어지며 우리를 구원해 주실 자비 원력이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열반에 든다고 말할 때, 부처님이나 선지식께서 보이시는 색신의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 들이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행원품에서는 부처님과 선지식에게 “열반에 드시지 말고 일체중생을 영원토록 이롭게 하여 주소서.”하고 권청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부처님이나 선지식께서는 중생을 버리시고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인 열반의 세계에 머무시는 법이 있지 않은 것이다.

부처님은 깨치신 어른이시다.

깨쳤다는 것은 지혜를 완성하셨다는 뜻이다.

지혜가 완성되었으므로 당연히 생사의 세계에 머무시지 않은 것이다(智慧故不依於生死).

지혜의 완성은 그대로 열반의 증득(證得)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열반이란 생사 세계와 별개로 있는 딴 세계의 사실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만약에 열반이라는 사실이 이 생사 세계 밖 어디인가에 따로 마련되는 수승한 상태를 의미한다면, 그것을 생사 세계와 대립하여 있는, 또 하나의 상대 세계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열반일 수 없는 것이다.

열반은 일체의 대립과 한계가 부정되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열반의 세계는 모든 것이 ‘나’인 세계이다.

열반의 세계에는 남(他)이 없다.

그러므로 지혜에 의해 생사를떠나신 부처님께서는 일체 모든 중생을 떠나시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일체 중생을 당신의 생명 내용으로 삼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