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론의 극복과 12처설의 가르침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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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론의 극복과 12처설의 가르침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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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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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강좌

일체(一切)는 십이처(十二處)다.

이것이 예전에 우리가 공부했던 결론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진정한 존재이려면 인식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낳게 한 근원이 되는 가르침이 바로 이것입니다.

‘육근과 육경으로 모든 것은 포섭되느니라.’ 이런 뜻이죠.

우리가 12처라는 말을 할 때, 이 처(處)라는 말을 장소로 생각하면 이해가 좀 천박한 것입니다.

포섭하는 장소 즉, 포섭처, ‘이 세상 모든 것을 포섭할 수 있는 범주’라는 뜻으로 쓰였거든요.

이 처라는 말은 참 음미할 게 많아요.

눈, 귀, 코, 혀, 몸이 하나뿐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성립하는 말이에요.

그러나 색, 소리, 냄새, 맛, 촉감이 하나뿐일 수는 없어요.

세상에는 숱한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들이 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이 안에 다 포함된다는 뜻이에요.

갖가지 것들이 다 이 안에 포함된다는 뜻이에요.

포함된다, 포섭된다, 그 안에 분류되어 들어간다는 뜻을 가진 말이 ‘아야타나(ayatana)’라는 겁니다.

처라는 말의 원어는 아야타나라는 건데요, ‘무엇인가가 그것으로 포섭되어 들어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에요.

그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모두 이 12가지에 포섭되어 들어간다라는 뜻이 성립된 것이죠.

‘내가 있다.’라고 할 때 ‘나’라는 것은 결국 보는 작용으로서 있고 내지 종합하는 작용으로서 있다라는 것, 그것이 육근(六根)의 뜻이 아니었겠어요.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상에 별별 희한한 것이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 나에게 인식되어졌던 그것들은, 보이는 내용 내지 종합된 내용 곧 색(色) 내지 법(法), 그 안에 다 분류 포섭된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의 세상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해 내셨어요.

그와 같이 존재하는 것은 인식되어야 하고 인식되는 것은 존재해야 된다는 문제를 얘기하니까, 어떤 분이 “열반은 인식되지 않고 있지만 불교에서는 있다고 하고, 신(神)은 인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한 명료한 답변이 있어야 되지 않느냐?”고 하셨는데, 강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그 문제도 오늘 함께 상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는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을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으로 설명을 끝내신 거죠.

이거야말로 ‘해 마쳤다’ 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존재란 무엇이냐’, ‘육근과 육경에 포섭되느니라’ 하면 설명이 끝나버립니다.

이러한 육근과 육경, 그것은 결국 ‘모든 것’입니다.

이제 이것들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를 한번 살펴보자는 겁니다.

그랬을 때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첫 번째 속성으로서 ‘의지적 작용의 속성’이 육근에게 고유하게 있고, 대신에 육경에게는 내가 일으킨 의지적 작용에 필연적으로 반응을 보여야 된다는 법칙적 반응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두 번째 속성은 오늘 우리가 배울 강의의 주제를 얘기하면서 연관을 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고자 했던 강의 주제가 육육법(六六法)이라는 거죠.

“모든 것은 12처니라.” 하고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뿐만 아니라 모든 경전에서 누누이 설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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