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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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 풍경
  • 관리자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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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데 부처는 왜 왔을까? 자네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만 말구 대답 좀 해봐.

안 그럴 작정이문 어여 들어가 등이나 달구.

제길….

그 등 값 십분의 일만 나한테 줘도 성불할 겨.

부처는 왜 왔어…?”

남루하고 너저분한 옷차림에 꺼칠한 수염을 빼면 여느 늙은이와 다름없는, 멀쩡한 노인이 일주문 쪽 담벼락에 자리를 잡은 채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노인의 말처럼 연등을 달기 위해 도량으로 들어서려던 젊은 내외는 그 앞에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지폐 한 장을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던지다시피 내려놓고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봉축 부처님 오신 날, 무심사 청년회 자원봉사’라고 적힌 어깨띠를 두른 청년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밀려드는 차량의 주차를 안내했다.

역시 똑같은 어깨띠를 두른 청년 한 패는 간이 사다리를 이리저리 옮기며 수천 개나 됨직한 연등에 꼬리표를 다는 데 여념이 없었다.

30~40대의 여신도들로 구성된 ‘무심회’ 회원들은 일주문 쪽과 대웅전 옆, 주차장 쪽 입·출구, 설법전 그리고 종무소 앞에 책상을 펼쳐 놓고 연등 접수를 받고 있었다.

‘무심사 합창단’ 단원들은 어깨띠를 두르지 않은 대신 유니폼으로 맞춰 입은 한복을 날아갈 듯이 차려 입고 설법전의 부속실에서 찬불가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봉축 법문을 위해 깊은 산 암자에서 내려오신 노스님은 불자들의 인사를 받느라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지경이었다.

“조실스님, 그 동안 별고 없으셨지요?”

신도회의 임원으로 있는 한 보살이 큰스님께 허리를 굽히며 반색을 했다.

“허허! 반갑습니다.

성불하십시오.”

큰스님이 그렇게 대꾸를 하고 지객실 쪽으로 향하자 무심사의 후원회장인 대덕화 보살이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나 구십도 쯤 허리를 굽혔다.

“큰스님 평안하시지요? 일 년 만에 내려 오셨네요.

저걸 어쩌나, 얼굴이 반쪽이 되셨네.

이따 잠깐 뵐 게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노스님이 빙긋 웃으며 대꾸를 했다.

“다 늙은 중한테 무슨 긴한 말이 있는고….”

그러자 이번엔 노스님보다 훨씬 연로해 보이는 노파들이 “아이구, 큰스님! 나무 아미타불.”하면서 저만치 인파 속에 자취를 감춘 노스님의 뒷모습을 향해 수십 번이나 합장 배례를 했다.

스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처님이라도 친견한 듯한 영광스러운 표정이었고 그만한 정성이었다.

도량 곳곳에 설치된 고성능 스피커에서는 『금강경』과 『천수경』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이따금 신도회의 임원을 찾거나 잘못 주차된 차번호를 부르며 협조를 부탁하는 안내 방송이 나와 염불이 끊어지고는 했다.

대웅전 앞마당을 뒤덮은 연등 밭 한 가운데에 마련된 임시불단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많은 꽃들로 뒤덮였고 그 위에 아기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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