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세계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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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세계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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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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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모든 여래의 미묘한 원각심에는 본래 보리와 열반이 없으며, 성불과 성불하지 못함도 없으며, 윤회와 윤회 아님도 없다고 하셨다. 윤회하는 마음으로 윤회하는 소견을 내어 부처님의 대열반의 경지를 알려고 하는 것은 전혀 무모한 짓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중생은 먼저 이 끝없는 윤회의 근본을 끊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생각을 짓는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며, 그것은 모두 감각을 통한 지각작용에 지나지 않으며, 참된 마음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육진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본래의 청정한 불성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수능엄경(首楞嚴經)』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마음이 움직여 형상이 생기고, 형상이 생기면 여러 가지 마음이 움직인다”고 설하고 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알고 분별하는 마음이 안이나 바깥 또는 중간에도 있지 아니하여, 아무 데도 있는 곳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여기서 ‘알고 분별하는 마음이 아무 데도 있는 곳이 없다’ 함은 마음 자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분적 물적 대상과 같이 개별적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은 모든 대상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장(場)은 될 망정, 마음이 시·공적 존재와 같이 일정한 장소를 점유하는 것이 아니므로 마음은 어느 곳에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모든 삼라만상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장(場)이요, 공(空)이기 때문에 무형의 것이면서 또한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대상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변화하고 없어지는 것이므로, 마음이 대상을 떠나 그 자체의 성질이 없다면 그것은 대상을 분별하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비유하기를, “만일 설법하는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네 마음이라 한다면 그 마음이 분별할 음성을 떠나서도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테면 나그네는 여관에 투숙할 때 잠깐 쉬었다가 곧 떠나지 끝까지 머무르진 않는다.

그러나 여관 주인은 떠나지 않으므로 주인이라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마음도 이와 같아서 참으로 내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떠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원각경』 「보안보살장」에 의하면 “한 마음이 청정하면 온 세계가 청정하다.”고 설하고 있다. 인간의 육신은 원래 자체가 없는 것인데, 그것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가지가 화합하여 형상을 이루었으니 그것은 헛것이며, 그 네 가지 인연이 거짓으로 모여 눈·귀·코·입·몸·뜻(眼耳鼻舌身意)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6근(六根)과 4대(四大)가 안팎으로 합하여 이루어졌는데, 반연하는 기운이 허망하게 그 안에 모이고 쌓여 반연하는 것이 있는 듯한 것을 이름하여 마음이라 한 것이요, 이 허망한 마음도 육진(六塵)이 없다면 있을 수 없고, 4대가 흩어지면 육신도 없을 것이요, 이 가운데 인연과 티끌이 흩어져 없어지면 마침내 반연하는 마음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중생의 환상인 육진이 멸하므로 환상인 마음도 멸하고, 환상인 마음이 멸하므로 환상인 세계도 멸하고, 환상인 세계가 멸하므로 환상의 멸도 또한 멸하고, 환상인 멸이 멸하므로 환상 아닌 것은 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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