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사상의 극복1
상태바
외도사상의 극복1
  • 관리자
  • 승인 2007.09.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학강좌3

지금 우리들은 불교라는 종교를 신행하고 있고, 불자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우리 주위엔 불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숱한 종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많은 종교들 속에서 우리 불자들은 어떠한 자세를 갖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는가 하는 문제들은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종교라는 것이 단순한 학문적 견해 차이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믿는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을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가 다르다는 것은 믿는 바가 다르고, 믿는 바 자체는 자기의 모든 것을 걸 만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가치가 달라지고, 인간의 삶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근본이 달라지는 그런 결과를 맞게 됩니다. 따라서 종교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종교가 대립함으로 해서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 예는 많았지 않습니까?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평화일 겁니다. 그런데도 종교 때문에 전쟁이 야기된다는 사실은 모순되지만 현실이거든요. 따라서 오늘날 종교학자들은 종교가 서로 대립하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 어떻게든 서로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종교간의 관용이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오늘 배울 주제가 ‘외도사상의 극복’입니다만, 이와 같이 ‘외도사상을 극복한다’, 또는 ‘비판한다’는 말은 종교다원주의(宗敎多元主義)의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다른 종교를 관용한다,’ 이런 식으로 바꿀 수가 있겠어요. 우리가 외도비판이라는 말을 많이 써왔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도(正道)라고 보고 부처님 가르침 외의 것을 바깥의 길이다 해서 외도(外道)라는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그런 다음에 그 외도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서 비판하는 일이 초기 경전인 『아함경』이나 『니카야』에 보면 놀라울 정도로 많이 설해져 있어요.

그걸 보게 되면 비판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철저히 합리주의에 입각해서 옳고 그름을 편견 없이 따집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사상이라도 장점이나 진실한 면이 나오면 과감하게 수용하고 단점이 있을 경우에는 그걸 지적하여서 수용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걸 오늘날로 말하자면, 그냥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라도 관용하겠다는 관용의 정신으로 볼 수가 있어요. 다른 종교를 관용한다고 했을 때, 관용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첫째, 형식적인 관용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있어요. 그냥 다른 종교를 방치해버리는 겁니다. 전쟁이나 권력, 경제력을 이용해서 다른 종교를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놓아 버리는 겁니다. 또한 무시해 버리거나 무관심해 버리는 겁니다. 그런 것도 일종의 관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인정해 버리거나 용서해 버리는 그런 관용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관용은 진정한 관용이라 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종교학자들은 내용적 관용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내 종교가 위대하고 훌륭한 만큼 저 종교도 적어도 그만큼 위대하고 훌륭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절대적, 적극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는 그런 것이 내용적 관용입니다. 내면적 이해, 내면적 관용을 수행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내용적 관용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