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山門)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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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山門)에 들어
  • 관리자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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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나의 다짐

거주암자 를 오르는 길은 좁다. 한 사람이 오르내릴 정도로 좁은 길이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이다. 넓은 길을 여러 사람과 오르기보다 조용한 가운데 홀로 산길을 걸으며 세속의 때를 벗고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에 임하게 하려는 노스님의 배려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칠순 노모를 모시고 암자에 이르니 산문 대신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가 우리 모녀를 맞는다. 법당과 부엌이 달린 방을 가진 요사채가 이 가람의 전부다. 식구도 단출해서 노스님과 시중을 드는 재명 행자(行者)가 전부다. 가끔씩 공양주 보살이 절집 살림을 도우러 암자를 다녀 갈 뿐 초하루가 아니면 인적이 뜸한 곳이다. 마침 공양주 보살이 먼저 와서 있다가 우릴 맞는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반가워함은 오랫동안 같은 불자로서 우애가 다져진 때문이리라.

법당에 참배하고 아침 겸 점심상을 받는다. 채마밭에서 뽑아 온 푸성귀가 시장기를 부추긴다. 된장 속에 묻어두었다 꺼내온 장아찌를 숟가락에 걸쳐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비로소 허기가 가신다. 절집의 밥은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맛나다. 비싼 값을 치르며 맛보는 도심의 음식 맛과는 아주 다른 맛깔스러움이 느껴진다.

유달리 산 속은 해가 빨리 기운다. 어둠이 산을 덮자 싸늘한 기운이 가슴을 파고든다. 군불을 땐다. 굴뚝에는 연기가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온돌방은 금시 달아올라 방안 가득 훈훈함이 어린다. 산창(山窓) 틈으로 달빛이 기어들고 요사채 아래로 흐르는 개울물이 돌 돌 돌 소리를 내며 장단을 맞춘다. 산중의 밤은 자연의 소리로 가득찬다. 달빛과 별빛이 어둠을 밝히면 소리들이 일어선다. 대나무 부딪는 소리, 짝을 찾는 밤새의 울음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적막을 깨뜨리며 산사의 밤을 노래한다.

밤 늦게 재명 행자가 돌아왔다. 노스님의 시중드는 일에서부터 암자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재명 행자를 만난 것은 칠년 전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 암자를 찾았을 때 승복차림의 여인이 나를 반겼다. 지난날의 화려함을 벗고 왜 하필 칙칙한 잿빛 옷으로 자신을 감싼 채 산으로 숨어들었는지 의문스러웠다. 생각도 잠시였고 곧 그녀를 잊었다. 어머니는 불교인이었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부축하기 위해 간혹 암자를 찾았을 뿐 불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관심을 가져볼 여유도 없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에게 위기가 왔다. 우울증이었다. 삶의 무상에 가슴이 아렸다. 무기력한 나 자신이 싫기만 했다. 두꺼운 커튼으로 빛을 가렸고 이웃과도 멀어져갔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행을 했다.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발길이 머무는 곳에 잠시 머물었다. 그러다 휴게소에서 향 짙은 커피를 마시는 여유도 얻었고 산을 찾아 계곡 물에 발을 담그는 시간도 가졌다. 또 농가에서 밤을 지새우며 쳐다보는 별들의 아름다움도 느꼈다. 그러나 공허한 마음을 다 채우지는 못했다.

우연히 산사를 찾았다. 해질 무렵 들려오는 범종소리에 평온함을 느꼈다. 바람에 마음을 씻고 독경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솔가지를 건드릴 때마다 울려 퍼지는 그윽한 풍경소리는 나를 사로잡았다.

‘저 고운 소리를 어디에서 또 들을 수 있을까.’

풍경을 샀다. 창가에 매달아 놓고 ‘댕그랑 댕댕’ 울리는 고운 소리를 듣고자 함이었다. 틈이 나면 읽어볼 요량으로 책도 한 권 같이 사왔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생각이 나서 펼쳐보았다. 윤청광 님의 고승열전 중 동산 스님의 일대기를 엮은 책이었다. 그는 촉망받는 젊은 의사였다. 세속적 부귀영화를 초개 같이 버리고 중생의 병든 마음을 고치고자 출가의 길로 들어선 큰의사이며 큰스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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