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전법륜이란 만나는 이마다 모두에게 법문 들려 주기를 청하는 것이니, 법문은 내가 간절히 듣기를 원할 때 비로소 내 귀에 들려 오며 법문의 수레 바퀴도 굴러가기 시작한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법문 속에 살면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일이 많다. 관심이 없으면 가져도 가진 줄 모르고 있어도 있는 줄 모르는 법이다.
중생은 대단한 존재라 내가 아니다라고 하면 부처님이 오셔도 어쩔 수가 없다. 보조 스님께서도 수심결에서 ‘따르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구나’ 하고 탄식하신다.
그런데 행원품에서의 청전법륜은 선지식에 대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일체 중생에 대해 법문을 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가진 존재라 누구나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행원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선남자여, 시방 삼세 일체의 부처님 국토에 말할 수 없이 많은 일체의 부처님들이 깨달음을 이루고 계신다(一切諸佛 成等正覺).
일체제불 성등정각!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그 부처님 낱낱마다 이미 모두 정각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이 바로 청전법륜의 소식이요, 화엄경의 소식이다. 그리하여 찰찰진진(刹刹塵塵)두두물물(頭頭物物), 이 세상 어느 한 물건이든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선지식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범부도 깨닫는다. 일체 중생이 모두 깨닫는다. 그러므로 백 명이 모이면 백개의 각기 다른 법문이 나오고 천 명이 모이면 천 개의 각기 다른 법문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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