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지계와 자비 수행의 밑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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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은 지계와 자비 수행의 밑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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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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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光 大師 嘉言錄 12

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과거 부모이자 미래의 부처이기도 하지요. 온갖 방법을 강구하며 보호하고 구제하여도 오히려 부족할까 걱정해야 할 판에, 어찌 한순간 우리 입과 배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몸을 죽인단 말이오?

우리는 물뭍이나 허공을 기고 날고 헤엄치는 모든 중생들이 똑같이 영명(靈明)한 지각(知覺)과 의식을 갖추었으나 단지 숙세의 업장이 몹시도 깊고 무거워 우리와 다른 모습의 몸을 받은 걸 알아야 하오. 비록 그들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먹을 것을 찾고 죽기 싫어 피하는 꼴을 보면, 그들 역시 우리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달을 수 있지 않소?

우리는 다행히도 전생의 복덕에 힘입어 인간으로 태어나 지혜로운 마음까지 받았으니, 마땅히 만물이 모두 우리와 같이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생겨난 동포임을 알고 형제의 우애를 도탑게 다해야 할 줄 아오. 그래야 인간이 하늘 및 땅과 함께 삼재(三才)로 자부하며 천지자연의 생장변화 이치〔道·眞理〕를 참구하고 보필하는 대의명분이 부끄럽지 않게 되오. 인간과 중생이 각각 자기의 자리를 얻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평화롭게 공존공생하며 타고난 천수(天壽)를 다해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천지 자연이 만물의 생명을 낳아 기르는 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의 입맛이나 즐기고 뱃속이나 채우려는 생각만 품고, 자기가 좀 강하고 재능있다고 약한 그들을 마음대로 잡아 그 고기를 먹는단 말이오? 그러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전생에 쌓아 둔 복덕이 다하고 살생의 죄업이 눈 앞에 나타나는 날이 닥칠 것이오. 그 때는 인간의 얼굴과 모습을 바꾸고 싶지 않더라도 업력(業力)에 따라 그들과 서로 자리를 바꾸어 잡아 먹히는 꼴이 될 것이오.

하물며 육식은 독성(毒性)이 강한데도 즐겨 먹고 싶단 말이오? 피살될 때 원한의 마음이 내뿜는 독기(毒氣)가 엉기기 때문이오. 그래서 무릇 전염병이 나돌 때에도 채식하는 사람은 감염되는 일이 몹시 적다오. 또 고기는 아주 더럽고 혼탁한 물건으로, 이를 먹으면 피가 흐려지고 정신도 맑을 수 없게 되오. 발육성장은 빠른 게 사실이지만 그만큼 일찍 노쇠해지고, 특히 질병에 가장 쉽게 걸리는 취약 체질의 화근이기도 하오.

반면 채식은 맑고 정갈한 식품으로, 채식을 하면 기혈(氣血)이 맑아지고 정신도 또렷해지며, 자양분도 풍부하여 건강장수하고 잘 늙지 않게 되오. 이는 비록 보건위생에서 늘상 거론하는 상식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성품을 다하는 지극한 이론이기도 하오. 다만 속세의 관습이 잘못 이어지면서 그만 미혹과 사견이 갈수록 두텁게 쌓여 본래 성품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라오.

어진 사람은 반드시 만물을 사랑하고, 생명을 죽이는 자는 결코 어진 사람이 아니오. 이는 습관(업습)과 천성 때문이라오. 그래서 성왕이 세상을 다스릴 때에는 길짐승이나 날짐승은 물론 물고기와 미물까지 모두 즐거워하며, 대도를 밝혀 백성을 교화하기에 활이나 창, 낚시 같은 살상무기를 모두 없앤다오. 옛부터 지금까지 두루 살펴보면, 잔인하고 재물과 음식에 탐닉한 자들은 집안이 대부분 끊겼으며, 어질고 자비와 사랑으로 만물을 구제한 이들은 자손이 반드시 창성하였소. 그래서 산 사람을 차마 순장(殉葬)시킬 수 없어 대신 인형(俑:진시황릉에서 출토된 兵馬俑 같은 附葬品)을 만들어 쓴 창시자에 대해 공자는 결코 후손이 없을 것이라고 단죄하였으며, 제멋대로 고기를 먹는 사람에 대해 여래는 반드시 그 빚을 갚아야 할 것이라고 수기(授記)를 내리셨소. 단지 푸줏간(도살장)만 멀리하면서 도살의 모습과 비명을 보고 듣지 않으면 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적당히 자신과 타협하지 않기를 바라오.

이는 유가에서 세속의 풍습에 따라 할 수 없이 내세운 임시방편의 교화일 따름이오. 진실로 비린내와 매운 맛을 영원히 끊어야 바야흐로 부처의 가르침과 진리에 부합한다고 일컬을 수 있겠소.

옛날 노(魯)나라에 용감한 두 사람이 있었는데, 피차 이름만 익히 듣고 서로 직접 만나 보지는 못하였소. 그러다가 어느날 서로 만나 술을 사서 함께 마시게 되었다오. 한 사람이 “고기 안주가 없으면 맛과 멋이 별로 없으니 가서 고기를 사오자”고 말하자, 다른 한 사람이 “그대와 내가 모두 고깃덩어리인데 어찌 달리 구한단 말이냐?”고 대꾸하였다는 거요. 이 말을 듣고 그 식견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 그들은 마침내 옷을 걷어 부치고 각자 살을 떼어 서로 상대방과 맞바꾸어 먹었다오.

그들은 의기양양하여 자신들의 교유야말로 마음과 뜻이 서로 진지하게 들어맞는 친구 사이라고 여기며 각자 살까지 베어 내어 먹었지만 마침내 죽고 말았소. 이 소문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어리석음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소.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바로 육식 때문에 끝없는 살생의 죄업을 지어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자리를 뒤바꾸어 가면서 살생으로 보복하고 있으니, 이들 노나라의 용사들보다 더욱 비참하고 혹독한 셈이오. 지혜의 눈이 없기 때문에 후세의 과보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득의양양하게 육식을 자랑하고 과시하면서 채식하는 사람들을 미신이나 박복(薄福)의 소치로 덮어 씌우고 비방하기 일쑤요. 세인의 습속이 오래 이어져 내려와 잘못조차 모르고 있는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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