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음 나의 다짐] 즐거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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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나의 다짐] 즐거운 아침에
  • 관리자
  • 승인 2007.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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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나의 다짐

6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창밖에서 아침의 신선한 대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멀리 양평의 전경이 한 눈으로 들어오고 그 뒤로는 용문산 자락 백운봉이 의젓하게 서 있다. 대문도 없는 집을 나서서 들길로 나선다. 5분도 안 돼서 넓은 송학벌이 펼쳐진다. 거울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송학교를 건너면, 여기저기서 낯익은 들새들이 날아 오른다. 자기들만의 비밀을 들킨 것처럼 재재거리며 날아간다. 그래도 눈에 익은 침입자라서인지 분노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우아한 날개를 펼친 백로가 느긋한 자세로 비상하는 아침.

언제부턴가 나는 이맘 때면 항상 이곳을 찾는다.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지상의 모든 평화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지금.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멀리 서쪽의 야산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언제나 지상에서 가장 다정한 분이 미소짓고 계시다. 약간 슬픈 듯하면서도 가장 푸근한 미소를 머금은 분. 나는 그분의 얼굴을 다시 그려본다. 눈, 코, 입, 귀, 손 그리고 따스한 가슴.

작년 어느 날. 나는 이곳에 서원을 세웠었다. 당신의 이름이 이 벌판에 가득찰 때까지 부르겠노라고. 벌써 1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고, 오늘도 나는 이곳에 서 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힘차게 걷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염불행자가 된 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현능 스님의 인도로 보광 스님의 문하에서 염불행을 시작했다. 언제나 의식이 살아있는 동안은 아미타불의 상호를 그리고 명호를 불러보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사 어록을 뒤지던 나로서는 어쩐지 어색한 시작이었지만, 수행에 어디 별다른 길이 있으랴고.

몇 년 전 당시 30대 중반이던 나는 너무도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던 탓에 10년 가까이 노력해서 어렵사리 마련한 집을 보증을 섰다가는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날려버리고, 조금 가지고 있던 현금마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친근한 사람이 어렵다고 찾아오면 통장째 주어버리는 나를 보고 마루 엄마는 세상에 당신 같은 바보는 둘도 없을 거라고 탄식하면서도 지금까지 별다른 충돌이 없는 것을 보면 마루 엄마도 바보인가 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나의 재산을 무용지물로 만든 사람들이 그동안 쌓아온 신의마저 물거품으로 만들고는 사라져 버릴 때였다. 어차피 세상사야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시련이 닥치게 마련인 것을. 차라리 눈앞에 나타나서 사정의 전모를 이야기하고 더 열심히 뛰어보겠노라고 말했더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을.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참고 견뎌보려고 했던 나의 마음에도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불교를 가까이 하고 행동거지가 온화했던 탓에 ‘대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다른 사람을 미워할 줄 모르던 나의 눈에 핏발이 조금씩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마루 엄마가 몸이 부실해져서 병으로 누운 지 3, 4년이 될 때쯤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아픔이 극에 달했을 때, 그 동안 쌓아온 자비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부도덕한 자들에 대한 증오로 몸부림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우연한 기회에 재경 중학교 동창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곳에서 현능 스님을 만났다. 당시 상계동 사천왕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도심 포교를 이룬 스님은 나에게 불교 대학원을 다닐 것을 권유했다. 당시 서서히 자신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던 나는 별다른 생각없이 시험을 치르고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다녔고,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또, 스님의 추천으로 청계산 자락에 자리한 정토사의 정기 법회에 참여했다. 염불행자가 된 것이다.

정토사 주지스님인 보광 스님은 프로를 위한 조사선보다 아마추어를 위한 염불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셨다. 새벽에 108배, 일상에 1000번 염불을 모든 신도에게 적극 권장하셨다.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불서를 읽고 또 틈 나는 대로 염불을 하는 동안 나에게는 여러 가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엔가 내 마음 속에 싹터 있던 미움과 증오가 나도 모르게 사라진 것이었다. 부처님을 부르면서 증오심을 품을 수는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 해도 그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도 희유한 결과였다.

지금의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느 날에 세속적인 나의 꿈과 희망을 모조리 부수어 버리고 어느 하늘 아래선가 가슴 졸이며 숨쉬고 있을 그들을 위해. 부디 성공해서 웃으며 나와 손잡고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또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을까? 고통과 번민으로 지새운 수 많은 날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인과의 사슬들. 어쩌면 그들은 나에게 다시 만나기 힘든 스승이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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