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지난 임자년(1792년) 태수(太守) 김후(金侯) 홍도(弘道)가 이 자리에 부임해 왔다가 가뭄으로 인해서 비를 빌기 위해 이 암자에 올라 이르기를 “암자의 정결함이 고을 안에서 제일가니 마땅히 그 치성 드릴 곳으로 삼아야겠다.”고 하면서 녹봉을 던져 시주를 베풀어서 소조(塑造) 불상(佛像)의 색이 흐려진 것을 개금하여 환하게 드러내고, 진영과 탱화가 부서지고 벗겨진 것을 비단에 물감을 먹여 그리고 칠하였다.
태수는 늙도록 아들이 없더니 이 산에서 빌어 아들을 얻었다. 이것은 곧 내 알기로는 그가 착한 일을 쌓은 끝에 얻은 경사이거니와 승려들은 착한 법보에 응답하신 것으로 돌릴 것이다.
__ 「연풍군 공정산 상암사 중수기」,『조선사찰사료』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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