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만남 작은 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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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만남 작은 신행
  • 관리자
  • 승인 2007.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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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나의 다짐

'1993년 5월 19일 오후 4시 반'

여직원이 건네준 수화기에서는 큰 아들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머님이 갑작스 레 운명하셨다는 것이다. 순간 앞이 캄캄하고 입술이 바싹 말라 말이 나오지 않고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 왔다.

그해 여든일곱이신 어머님은 매일 새벽 묘법연화경을 봉독하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밤에도 역시 법화경 봉독으로 마무리하셨는데 큰 아이의 말인즉 점심 후 두 시간쯤 되었을 때 할머님 행동이 이상해서 병원으로 모시던 중에 운명하셨단다.

이럴 때에 기가 막히다는 말을 해야 하나? 그렇게 어머님은 식사 후 운명을 달리 하셨다.

나는 젊었을 때 어머님이 부처님 믿는 것에 극성(極盛)을 부린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부처님을 만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 모습이 지극정성(至極精誠)임을 알게 되었으니 너 무 늦게 철이 들었다. 이제는 나도 어머님을 닮아가고 있다.

어머님의 자비(慈悲)는 가히 상상을 넘을 정도였기에 아는 사람들은 속된 말로 '부처님 가 운데 토막'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불교에 대한 법회와 강좌등이 많지만 어머님이 불교에 귀의 하셨을 때는 해방 후라 기독교가 맹위를 떨치는 것은 물론이고 불교(佛敎)는 미신(迷信)에 속한 것 같은 인상을 주 던 시대였다. 더구나 스님들이 처첩(妻妾)을 두어 비방의 대상이 되던 때였으니 얼마나 불교 가 천대(賤待)를 받았나 알 수 있다.

해방과 더불어 중국에 있던 아는 분이 귀국하면서 법화경을 가져왔다. 그때 어머님은 법화 경을 처음 접하게 되셨다. 또 법화경을 믿는 절은 빈부의 차이 없이 참례하는 것으로 서로 위로하고 불법을 익힌다는 것을 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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