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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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먹기
  • 관리자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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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구름처럼

밀가루 음식을 잘 만드는 도반스님과 안거(安居)를 지내고 있다. 스님의 공양주 경력은 이미 여러 곳에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그는 특히 국수를 잘 끓이는데 우리 절 채공보살도 그 맛을 따르지 못한다. 국수는 승소면(僧笑麵)이라 할 정도로 스님네들이 즐겨 먹는 별미로 통한다. 나 역시 국수는 그 자리에서 몇 그릇쯤은 식은 죽 먹듯이 식탐을 내는 음식이다.

사실 나만큼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이도 드물 게다. 하루 세 끼니를 국수로 주식을 삼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라면으로 식도락을 삼고 있다. 맛 잘내는 도반스님 덕분에 밀가루 음식이 자주 식탁에 오르는 셈이다.

행자시절, 스님네들이 울력을 할 때 간식으로 국수를 삶곤 했는데 가마솥 가득 끓이는 날에는 행자들도 한켠에서 맛을 볼 수 있었다. 버섯으로 우려낸 국물에 양념간장을 넣어서 후루룩 먹던 그 맛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수십 개의 라면을 한꺼번에 끓일 때도 있었다. 라면이 불면 스님들게 혼나기 때문에 군대식 조리법이 응용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건데기면과 스프국물을 따로 끓이는 식인데 국수처럼 면발을 미리 건져 놓았다가 그때그때 국물을 부어서 먹는 방법이다.

스님들이 먹고 남은 불어터진 라면은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공양울력'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공양울력은 '나눠먹기'의 절집안식 표현이다. 고참행자부터 그릇에 담게 되는데 맛 없는 걸 많이 먹을 리 없다. 결국 신참행자들이 먹어야 할 몫이 많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밀가루 음식을 좋아한 나로서는 그렇게 큰 곤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풋내기 학인시절에는 '뒷방조실' 소임을 살았던 도반들의 덕을 보면서 간간히 밀가루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뒷방의 노스님들을 시봉하기 위해 시자실에서 생활하는 스님을 일러 뒷방조실이라 불렀다. 앞방은 진짜 조실큰스님이니까 뒷방은 시자(侍者)보는 사미승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같은 조실(祖室)이라도 법력은 천지차이. 이같은 '가짜조실'들이 여럿 있는데 '행자조실'과 '지대방조실'이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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