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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윤남진 NGO리서치 소장나는 부처님 법대로 살았는가

전남 곡성 대원정사. 윤남진(53) NGO리서치 소장이 자리한 곳이다. 지난 2017년 5월, 그는 집 파주와 일터인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정리해 이곳에 정착했다. 잠시 머물러 온 것이 아니라, 곡성을 터전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현대 한국불교운동사’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기에 그의 귀촌은 불교계에 금방 회자되었다. 몇은 수긍했고, 또 몇은 교계에서 할 일이 많은데 너무 일찍 내려갔다고 했다. 동국대 85학번인 그는 경찰행정학과 재학 시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구성’으로 90년 4월에 구속된 후, 93년 4월에 석방됐다. 감옥에서 나와 복학 후 93년 7월에 졸업했다. 당시 국가보안법에 함께 연루된 불교학과 출신들이 있었다. 또 복역 중 그에게 면회 오며 편지와 불교 책을 건네주었던 이가 바로 불교학과 87학번인 지금의 아내 한주영 씨(불교환경연대 사무국장)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불교학과 출신들과 교류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법안 스님과 일문 스님을 만나 간사 일을 시작한 것도 그때다. 그는 이때부터 불교계 안으로 들어왔다. 

 

사진 : 최배문

|    재가활동가의 길, 25년

“(실천불교전국승가회에) 들어가자마자, 승려대회 이야기가 나왔다. 10.27법난을 기념하는 성명서를 나보고 쓰라고 했다. 『민중불교론』, 『실천적불교사상』을 본 것밖에 없는데, 격문도 쓰고, 신문도 만들고 했다.” 

이후 96년에 총무원에서 ‘깨달음의 사회화’ 간사, 포교원 등에서 3년 동안 일했고, 다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전국불교운동연합, 불교바로세우기재가연대, 참여불교재가연대, NGO리서치 소장 등 25년 동안 재가활동가의 길을 걸었다. 활동 이력을 봐도, 고단한 몸이었음을 짐작한다. 

곡성역에서 택시를 타 10여 분 지나면 ‘대원정사’를 가리키는 작은 나무간판이 보였다. 산판길을 따라 200미터를 들어가니, 작은 전각과 살림집이 눈에 들어왔다. 저 위 전각 쪽에서 머리가 희끗하고, 마른 이가 여름 볕을 역광으로 받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지만, 서울에서 봤던 그것과 달랐다. 그을린 얼굴과 살집 없는 몸은 마치 어느 토굴에서 홀로 정진하는 수좌를 보는 듯했다. 건강이 어떤가를 묻자, 그는 옅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이곳 대원정사는 그의 장인과 장모가 지은 절이다. 절이라고 하지만, 부처님을 모신 전각 하나가 전부다. 그가 우리 일행을 안내한 것은 다리 밑 평상. 평소 장모님의 쉼터로 계곡의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3년 아래인 나에게 그는 멀리서 벗이 왔다며 막걸리를 내왔다. 서울에서도 말수가 적었던 그는 이곳에서 더욱 말을 가렸다.  

- 10년 전 위암 진단을 받았다. 갑작스런 몸의 변화는 일과 생활에 여러 변화를 일으킨다.  

“아무래도 한창 활동했던 때에 감당했던 일의 수준이 있는데, 위를 절제한 후 몸이 따라주지 않아 답답했다. 일은 보이는데.(웃음)” 

- 위암 진단 후에도 일을 쉬지는 않았다. 작년까지도 신대승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일을 했다. 여기 내려온 지금도 일이 보이고 그런가?

“(내려오기 전인) 작년까지도 일이 보이면, 일에 몰입하고, 지치면 다시 쉬고…. 그렇게 반복했다. 지금은 여기에 내려오면서 많이 접었다.”

- 곡성에 내려온 지 1년이 지나갔다. 왜 이곳으로 내려왔는가?    

“쉰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머님과 장인, 장모님이 모두 연로하셔서 직접 모셔야 했다. 개인적으로 쉬고, 기도도 하고. 또 현장에서 떨어져 지내보려는 마음도 있었다.”

- 신대승네트워크 회의 때 서울로 가끔 올라오기도 한다. 

“(잠시 침묵하며) 이젠 잘 가지 않게 된다. 서울에.”

- 왜 그런가?

“(교계 단체들이) 활력이랄까. 추동력 있게 나가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대승도 그렇고. 서울에서 들리는 (교계) 소식을 보면, 너무 중구난방이고, 틀을 잡아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지금 교계가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여기 와서 지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내가 학생 때를 제외하고 계속 불교 활동에 매진해왔는데, 이곳에서는 그 경험들이 현실적인 쓸모가 하나도 없었다. 또 하나는 불교 운동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불교의 사상, 이념, 실천론 등등 이런 것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기선) 유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되짚어 보고 있다.”

사진 : 최배문

|    불안의 실체를 보고 있다

- 되짚어보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사회적인 삶, 도시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불교는 유용했다. 근데, 이렇게 곡성으로 내려와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개인에게는 다른 문제였다.”

- ‘다른 문제’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다. 도시에서 기도는 중심이 아니었다. 일이 중심이었으니까. 사람들과 함께했던 도시에서는 기도를 중심에 두고, 다른 일을 펼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도는 가욋일이었다.”

- 불교를 바라보는 가치가 달라졌다는 뜻인가?

“그동안 나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결속력이 강하고, 견고하다고 보고, 생활해왔다. 사회운동의 성격이 그렇다. 그런 의지와 당위가 있었다. 근데, 견고하지 않았다. 이렇게 내려와 떨어져있어 보니까. (잠시 생각한 후) 견고한 관계가 없어졌을 경우에, 거기서 오는 ‘불안’의 요소가 있다.”

- 그 불안이 뭔가?

“사회운동은 사람들과 관계가 결속되고, 의지도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운동하면서 그것 자체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아마 불안이 덜했을 것이다. 여기 온 것이 쉰다고 생각했지만, 기도를 하면서, 불교적으로 생활을 챙겨나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조금씩 불안이 생겨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있고.”

- 지금은 여기에 내려와 (결속하고 연대하는) 불교운동을 멈춘 상태이다. 

“불안의 요체는 그때도 존재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속과 연대를 강조하는 배경 속에는 그 불안이 잠재되어 있었지 않았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이제 그 불안의 실체를 보는 것이다. 그때는 삶 속에서 지나가는 것이었고, 살필 여유가 없었고,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았던 것 같다. 무상無常, 무아無我, 공空을 붙들고 갔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것을 붙들고 가는 자의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한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공간이 바뀌었다고, 무상과 공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그런 것이 안 되어 있었구나, (지금은) 그게 보인다. 물론 활동에만 매진했다고 위안할 수 있고, 또 활동을 부정할 것도 아니지만, 어떻게 관조할 수 있는가, 스스로 묻는다. 삶에서 무상, 무아, 공이 진리라고 하는데, 그 진리대로 살았고, 행위를 했었는가.”

- 왜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일을 만나면 종사從事해야 한다. 특히 사회운동은 딴청 피우지 않고 종사해야 한다. 또 사람과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종사해야 한다, 사람의 관계망을 중시하는 곳이기에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걸 보기가 좀 어렵다.”

- 무상, 무아, 공을 일 속에서 붙들고 가는 것과 가지 않은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풀어야 할 숙제다. 주관적인 욕심, 의지, 어느 한 쪽에 경도되지 않는 것,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 또 억지로 하지 않고 멈출 수도 있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 어려운 과제인 것 같다. 

“재가연대 활동 때는 시민사회 쪽에 불교 운동의 축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이 아주 강했다. 또 총무원과 견줘 대응할 정도의 수준과 중심이 되도록 했다. 당시는 그런 환경이었고, 또 성과도 많았다. 어느 순간 조직을 분화, 확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렇게 실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안 됐다. 신대승네트워크는 재가연대와는 달리 중심이 없는 조직을 추구했다. 상근자도 최소로 하고. 지금 불교 단체의 활동을 보면 위상 설정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일시적인 것 같다.”

사진 : 최배문

|    우리가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 불교 운동이 어떻게 흘러갈 것 같은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뭘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할 수 있는 동력과 에너지가 있는가. 열정과 역량이 되는가. 실력이 있는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 전반적으로 다운된 상황이다. 그런 상황 자체가 앞으로의 현실이 어디로 갈 것인지 알려준다. 답답한 형국이다. 그렇지 않은가? 생산적으로 이루어지는 뭔가를 개발해서 진행하는 것이 없다. 국고를 받아서 하는 것 외에 있는가? 자구적인 노력들이 없으니까. 사람도 없다. 다 호구지책으로 간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활력이 보여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데…. 젊은 세대가 갑자기 영입되는 것도 아니고.”

- 당분간 답답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란 뜻인가.

“그렇다. 승가 쪽은 잘 모르겠다.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교를 해석하고, 삶에 투영하는데, 짚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단순히 ‘보살의 삶’이나 실천의 항목들로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각각이 처한 삶과 환경에 따라 불교의 명사名詞가 같더라도 각각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 승가든 재가든 이제 그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세속의 흐름에 쉽게 휩쓸려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부족한 점이 무엇일까.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하지만, 잘 행해지는 것까지 안 되는 것은 왜 그럴까. 그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면, 우리가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우리 불자들이 지나치게 과신過信하는 경향이 있다.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했다고 해서 부족함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닌가. 당연히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불교의 가르침이 뭔지 자꾸 물음을 던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불교의 가르침을 해석하는데 ‘간단한 거야, 다 같은 거야, 불교에 다 있어’ 등등 이런 말들을 너무 쉽게 말한다. 근데 이런 것들은 액션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런 물음까지 나아가는 데 아주 어렵다.”  

- 불교 운동하면서도 수행에 관심이 많았고, 간화선을 하고 관련 글도 쓰기도 했다.

“초보자다.”

- 법당이 있으니까, 새벽예불을 한다고 들었다. 

“새벽 4시 30분에 혼자 한다. 목탁은 치지 않는다. 배우지 못했다.”

- 기본적인 방법으로 치면 되지 않나.

“목탁도 법도가 있는데, 법도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좌선도 하는가?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고 난 후, 좌선하는데 아직 잘 못 한다.”

 

|    윤남진의 발원문

- 앞으로 여기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도량 자체를 사람들이 와서 편히 쉬고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렇다고 수행처는 아니고(웃음). 일단 3년 정도는 여기에 푹 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혀 새로운 환경이니까.”

그는 수행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아꼈다. 말을 하다가 멈춘다. 더 채근하진 않았다. 그가 매일 기도하는 발원문이 궁금했다. 어떤 내용이냐고 묻자, 그는 웃었다. 법당에서 했듯이, 우리 일행 앞에서 발원문을 익숙하게 읊조렸다. 

한량없는 법으로 저희들을 가르치시는 부처님, 몸과 마음을 다해 부처님께 귀의하고 합장 발원하옵니다.

진실로 참회하오니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업장 소멸토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저를 낳아 기르신 부모님 평생의 반려자와 아들, 딸, 형제, 자매들 우주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한결같이 부처님의 가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옵소서. 

집안에 우환이 없고, 하는 일은 번창케 하시고 이웃에도 나눌 수 있게 하옵소서.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도 풀이 나고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수가 언젠가는 바위를 뚫는다고 했습니다. 

찌푸리거나 성내는 얼굴 하지 않고 좋은 얼굴 밝은 표정 지어 저를 대하는 모든 이들을 기쁘게 하겠습니다. 남의 허물을 참지 못해 송곳 같은 마음 내지 않고 언제나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를 힘들게 하고 괴롭혔던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깊이를 모르는 절망이 저를 쓰러뜨릴지라도 언제나 성성히 화두를 들어 걸림 없는 대자유의 길에 들어서겠습니다. 

이 원이 이루어지도록 세세생생 부처님 말씀으로 마음의 때를 씻고 일심으로 탐, 진, 치 삼독을 다스리겠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김성동  bulkp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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