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윤남진 NGO리서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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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윤남진 NGO리서치 소장
  • 김성동
  • 승인 2018.10.01 13: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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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처님 법대로 살았는가
사진 : 최배문

전남 곡성 대원정사. 윤남진(53) NGO리서치 소장이 자리한 곳이다. 지난 2017년 5월, 그는 집 파주와 일터인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정리해 이곳에 정착했다. 잠시 머물러 온 것이 아니라, 곡성을 터전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현대 한국불교운동사’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기에 그의 귀촌은 불교계에 금방 회자되었다. 몇은 수긍했고, 또 몇은 교계에서 할 일이 많은데 너무 일찍 내려갔다고 했다. 동국대 85학번인 그는 경찰행정학과 재학 시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구성’으로 90년 4월에 구속된 후, 93년 4월에 석방됐다. 감옥에서 나와 복학 후 93년 7월에 졸업했다. 당시 국가보안법에 함께 연루된 불교학과 출신들이 있었다. 또 복역 중 그에게 면회 오며 편지와 불교 책을 건네주었던 이가 바로 불교학과 87학번인 지금의 아내 한주영 씨(불교환경연대 사무국장)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불교학과 출신들과 교류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법안 스님과 일문 스님을 만나 간사 일을 시작한 것도 그때다. 그는 이때부터 불교계 안으로 들어왔다. 

 

|    재가활동가의 길, 25년

“(실천불교전국승가회에) 들어가자마자, 승려대회 이야기가 나왔다. 10.27법난을 기념하는 성명서를 나보고 쓰라고 했다. 『민중불교론』, 『실천적불교사상』을 본 것밖에 없는데, 격문도 쓰고, 신문도 만들고 했다.” 

이후 96년에 총무원에서 ‘깨달음의 사회화’ 간사, 포교원 등에서 3년 동안 일했고, 다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전국불교운동연합, 불교바로세우기재가연대, 참여불교재가연대, NGO리서치 소장 등 25년 동안 재가활동가의 길을 걸었다. 활동 이력을 봐도, 고단한 몸이었음을 짐작한다. 

곡성역에서 택시를 타 10여 분 지나면 ‘대원정사’를 가리키는 작은 나무간판이 보였다. 산판길을 따라 200미터를 들어가니, 작은 전각과 살림집이 눈에 들어왔다. 저 위 전각 쪽에서 머리가 희끗하고, 마른 이가 여름 볕을 역광으로 받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지만, 서울에서 봤던 그것과 달랐다. 그을린 얼굴과 살집 없는 몸은 마치 어느 토굴에서 홀로 정진하는 수좌를 보는 듯했다. 건강이 어떤가를 묻자, 그는 옅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이곳 대원정사는 그의 장인과 장모가 지은 절이다. 절이라고 하지만, 부처님을 모신 전각 하나가 전부다. 그가 우리 일행을 안내한 것은 다리 밑 평상. 평소 장모님의 쉼터로 계곡의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3년 아래인 나에게 그는 멀리서 벗이 왔다며 막걸리를 내왔다. 서울에서도 말수가 적었던 그는 이곳에서 더욱 말을 가렸다.  

- 10년 전 위암 진단을 받았다. 갑작스런 몸의 변화는 일과 생활에 여러 변화를 일으킨다.  

“아무래도 한창 활동했던 때에 감당했던 일의 수준이 있는데, 위를 절제한 후 몸이 따라주지 않아 답답했다. 일은 보이는데.(웃음)” 

- 위암 진단 후에도 일을 쉬지는 않았다. 작년까지도 신대승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일을 했다. 여기 내려온 지금도 일이 보이고 그런가?

“(내려오기 전인) 작년까지도 일이 보이면, 일에 몰입하고, 지치면 다시 쉬고…. 그렇게 반복했다. 지금은 여기에 내려오면서 많이 접었다.”

- 곡성에 내려온 지 1년이 지나갔다. 왜 이곳으로 내려왔는가?    

“쉰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머님과 장인, 장모님이 모두 연로하셔서 직접 모셔야 했다. 개인적으로 쉬고, 기도도 하고. 또 현장에서 떨어져 지내보려는 마음도 있었다.”

- 신대승네트워크 회의 때 서울로 가끔 올라오기도 한다. 

“(잠시 침묵하며) 이젠 잘 가지 않게 된다. 서울에.”

- 왜 그런가?

“(교계 단체들이) 활력이랄까. 추동력 있게 나가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대승도 그렇고. 서울에서 들리는 (교계) 소식을 보면, 너무 중구난방이고, 틀을 잡아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지금 교계가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여기 와서 지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내가 학생 때를 제외하고 계속 불교 활동에 매진해왔는데, 이곳에서는 그 경험들이 현실적인 쓸모가 하나도 없었다. 또 하나는 불교 운동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불교의 사상, 이념, 실천론 등등 이런 것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기선) 유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되짚어 보고 있다.”

|    불안의 실체를 보고 있다

- 되짚어보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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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장 2018-10-19 22:18:25
고맙고 또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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