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청선(松下聽蟬)
상태바
송하청선(松下聽蟬)
  • 관리자
  • 승인 2007.09.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빛의 샘, 나의 피서법

일찍이 우리 동해안은 산자수명하여 태고적부터 인간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수많은 시인 묵객을 불렀고, 강산은 시정(詩情)을 도와 이들로 하여금 주옥같은 시부(詩賦)를 토해내게 했으니 오늘날 세인의 입가에 오르 내리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율곡의 10세작 「경포대부」(鏡浦臺賦)나 송강(松江)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은 이를 헤아리고도 남는다.

또한 이인로(李仁老), 김극기(金克己), 안축(安軸), 이곡(李穀), 서거정(徐居正)등 기라성 같은 문사(文士)들도 이곳의 아름다움을 시부로 노래했다.

심지어 서거정은 "우리나라 산수의 훌륭한 경치는 관동이 첮째이고, 관동에서도 강릉이 제일이라."극찬했다. 김창협(金昌協)도 "조물주가 이 아름다움을 관동에만 집중적으로 베풀어 놓은 까닭을 모른다."고 했다.

오늘날 수많은 인파가 더위를 피해 다투어 찾는 이유도 바로 산수의 그루턱이 빼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우거진 솔숲, 맑은 계곡, 깨끗한 백사장은 강릉의 대명사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푸른 솔숲은 전국에서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일찍이 율곡(栗谷)도 이곳 해운정(海雲亭)을 두루고 있는 솔숲에 앉아 "송풍불수염(松風不受炎)"이라 하여 솔바람에 더위를 삭혔다.

사실 우리 지역과 소나무는 그 인연이 가멸찼다. 이인로는 「파한집(破閑集)」에서 "한송정에는 그 옛날의 사선의 무리 삼천이 각기 소나무 한 그루씩을 심어 지금도 창창하여 마치 구름과 같다."고 했으며, 그의 「한송정(寒松亭)」시에도 "그 옛날 뉘댁의 자손들 일까. 푸른솔 삼천그루 심은분들이 그들의 육신은 없어졌지만 솔잎은 오히려 무성하구나."라 읊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 선현들은 집주위에 소나무를 둘러 심고 한풍(寒風)과 혹서(酷暑)를 막았다. 유명한 율곡의「호송설(護松說)」도 여기에서 비롯되어으며, 이것이 바로 효의 근보이자 한서(寒暑)를 이겨내는 지혜의 샘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는 절개의 상징인 소나무를 유난히 좋아했다. 공자도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之松柏知後凋)"라 하여 늘 푸름을 사랑했고,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청청하리라."던 꼬장함도 소나무를 비유한 것이었다.

특히 적소(謫所)에 있을 망정 남의 눈을 꺼리지 않고 사제간의 의리를 다한 이상적(李尙迪)에게 "전이라고 더한 것도 없고, 뒤라서 덜한 것도 없다."며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그 올곧음에 보답했다.

잗달스럽지만 매년 이맘때면 솔바람에 더위를 식히던 조상들의 옛 멋을 떠올리곤 한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