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실행에 있지 그 말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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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실행에 있지 그 말에 있지 않다.
  • 관리자
  • 승인 2007.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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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불교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불교는 한마디로 깨우침의 종교이다.

붓다는 깨친 분이고 보리는 깨침의 내용이다. 석가모니 붓다라면 '깨치신 석가모니'라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많은 깨친 이들이 나온다라는 의미도 된다. 이를테면 샤르뜨르 붓다도 있을 수 있고 홍길동 부처님도 있을 수 있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모든 중생들은 붓다의 성품을 다 갖고 있다고 한 것이다.

불교공부는 깨침의 공부이다. Boddhi를 제외한 공부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나 조사 스님네께서 주로 말씀하신 내용이 깨침에 이르는 방법론과 그 공덕의 위대함과 피안에 이르면 어떤 즐거움이 있다라는 것과 사바 세계의 중생 고통들에 대한 말씀들이다. 그 방법들도 그렇게 크게 복잡한 이론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상식적이고 단순하다. 이론적으로도 어렵지 않다.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선지식들은 실천을 매우 강조하셨을 것이다.

붓다 수행의 기본 출발은 인간 고통에 있었다. 경에서 말하는 네 가지 고통과 여덟 가지 고통과 108가지 고통들이 문제의 출발이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고통 번뇌는 객관적인 대상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나에 의해서 오며 그것은 실체가 없이 본래 빈(공) 존재인 것이다. 나 자신을 실체가 있는 아(我)로 보고 거기에 집착해서 아집(我執)이 생기고, 나라는 유(有)의 존재는 변화를 허용하지 않고 영원성을 욕망하기 때문에 큰 정신적인 장애가 일어난다고 봤다. 그것이 그 유명한 중생병의 뿌리이고 세 가지 독이라고 하는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이다.

탐욕은 물질적 영원성과 편리성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래서 한없이 가지려고 한다. 갖지 못할 때 빈곤감과 위기감의 고통에 빠지게 된다. 화내는 마음, 여기에는 시기, 질투, 산란심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데 자기 존재가 무시당하거나 욕을 당했을 때 일어나는 고통으로 자기 존재의 절대성을 항상 추구함으로부터 일어난다.

어리석은 생각은 이치와 순리에 대한 이성적이고 인과의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미신과 허망에 의존하는 정신적인 미(迷)함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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