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 백제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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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 백제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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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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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

   양(梁)나라에서 30여 년 머문 발정(發正)

  발정(發正)스님은 정확하게 어느 해인지는 모르지만 양(梁)나라의 천감(天監) 년 중<512~519, 백제(百濟)25대 무령왕(武寧王) 2년~19년>에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 갔다.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인 중국에서는 남북조(南北朝)때에 불교가 매우 성하였다. 그 중에서도 양나라는 보기 드문 불교의 나라였었다. 그 황제인 무제(梁武帝)는 지나칠 만큼 독실한 숭불(崇佛)의 제왕(帝王)이었다. 불교의 교리에도 조예가 깊은 무제는 스님들 앞에서 경전을 강의할 정도였으며, 네 번에 걸쳐 삼보(三寶)의 도량(道場)에 사신(捨身)하였던 그를 사문황제(沙門皇帝) 또는 황제보살이라고들 일컬었다. 그러한 양나라에 도착한 백제의 발정스님은 이름 있는 절과 학덕 높은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찾아 불법을 익히고 더욱 정진(精進)하였다.

  주로 어디에 머물었고 어떤 계통의 교학을 공부하였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으나 그는 중국에서 30여 년을 지냈다. 그 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귀국길에 올랐다. 그가 백제에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자 바다 쪽을 향해 가다가 월주(越州)라는 지방이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그 고을 경계의 한 산에 관음도량(觀音道場)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찾아가 보았다. 그가 그 관음도량을 찾았을 때에는 지붕과 거기에 걸쳤던 연목은 모두 없어지고 토굴의 담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그 곳에서 일찍이 두 사람의 수도인이 공부할 목표를 세우고 찾아왔었다. 한 사람은 화엄경을 외우고 또 한 사람은 법화경을 지송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기 한 골짜기에 각각 토굴을 짓고는 서로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화엄경 독송자는 그 기간 안에 가능하였으나 법화경 독송자는 도저히 암송이 불가능하였으므로 법화경 중의 관음보문품(觀音普門品)만을 외우기로 하였다. 기한이 차는 날 화엄경 독송자가 법화경 독송자에게로 찾아왔다.

  그들은 단정히 앉아 먼저 화엄경 독송자부터 암송하였는데 한 글자도 빠트리지 않고 잘 외웠다. 다음 사람이 법화경 보문품을 암송하고자 첫마디를 외우기 시작하는데, 공중에서 갖가지 꽃비가 내리고 향기가 온 골짜기에 가득하게 퍼졌다.

  분량이 화엄경보다 적은 법화경을 외루지 못해서 짧은 보문품만을 암송한 친구를 업신여겼던 화엄경 독송자는 , 그 꽃비와 향기의 상서로운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불보살(佛菩薩)이 감응하는 보문품 독송자의 앞에 이마를 조아려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사과하였다.

  송경(誦經)이 끝나고 화엄 독송의 친구가 먼저 그 곳을 떠난 뒤에 혼자 남은 법화송자(法華誦者)는, 그 동안 자신이 보문품 압송의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매일 밥을 가지고 오는 노인이 바로 관세음보살 진신(眞身)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관세음보살로부터 직접공양을 받으면서 송경공부를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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