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시심(詩心)을 가꾸는 시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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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심(詩心)을 가꾸는 시인으로
  • 관리자
  • 승인 2007.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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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정말로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신선하게 부풀어 오르고 그야말로 금시 하늘에라도 뛰어오를 듯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다.

  어디 그뿐이랴? 거듭되는 절망,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 대한 깊은 절망, 뉘우침, 부끄러움으로 깜깜하게 침잠해가던 내 의식에 섬광처럼 반짝 불이 켜지고, 굳게 닫혀있던 자물쇠가 경쾌한 금속성의 소리로 열리고 나는 다시 활기있게 걸어나와 새로운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세상의 사물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다.

  정말 그렇다.

  누더기 같은 지금의 나를 깡그리 내어 버리고 다시 태어난 세상에서 새로운 내 인생을 펼칠 수 있다면, 나는 적어도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닐 것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훨씬 더 유능하고 훨씬 더 사랑스러운 여자로 이 세상을 활기있게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철저히 비범(非範)한 여자로 너절하고 상식적인 세상잡사는 철저히 무시하고, 가장 세련되고 맵시있는 모습으로 높은 무대 위에 서 있을 것이다.

  아마 끔찍하고 슬픈 살붙이의 인연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같은 것, 그러니까 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미는 일 같은 것은 아마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고통도 부끄러움도 모두 다 철저히 혼자서 가지며 지극히 자유롭게 지극히 외롭게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맹세하지만 정말로 내 옆엔 아무도 세우지 않을 것이다.

  작은 방에서 혼자서 잠이 들고 혼자서 잠을 깨며 한 점의 얼룩도 없이 깨끗하게 닦아놓은 유리창을 통하여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 보리라.

  불어가는 바람의 향방도 더욱더 확실히 헤아리고 세상사의 일렁임에도 더 깊이 천착하며 살리라.

  매일 매일 귀를 씻고 매일 매일 눈을 닦아 가장 미세한 먼지의 분자도 능히 보리라. 아주 작은 풀꽃의 한숨소리도 듣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때도 역시 시인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오백년 후에

  내 이 세상에 다시 올 수 있다면

  그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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