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를 살려 낼 약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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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를 살려 낼 약이 없습니까?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1.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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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緣起(2)

 

장휘옥과 김사업은 전문 수행자의 길을 걷기 위해 2001년 함께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의 외딴 섬 오곡도로 들어갔다. 이후 세계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수행했으며, 2003년부터는 간화선 수행에만 전념하여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의 다이호(大峰) 방장 스님으로부터 900여 회에 이르는 독참 지도를 받으며 피나는 수행을 해 왔다. 현재 오곡도 절벽 위 폐교를 수리하여 간화선 수행 전문도량 ‘오곡도 명상수련원’(www.ogokdo.net)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두 사람이 그동안 학문과 수행을 통해 얻은 삶의 불교를 제시하고자 한다.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사상은 연기緣起이다. 연기는 불교 교리 전체를 꿰는 실이요, 정수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세계 사상사의 견지에서도 실로 귀중한 사상이다.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형해만 남은 연기가 아니라 피가 흐르는 살아 있는 연기, 그 두 번째 이야기를 듣는다.
- 편집자 주

| 있는 것은 무상한 세계뿐이다
지난 호에서 모든 것은 연기緣起하고, 연기했다는 것은 ‘조건이 갖추어졌기에 생겨났으며, 그 조건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한번 생겨난 것은 소멸할 수밖에 없고, 소멸한 것은 방금 전에 불었던 바람처럼 그 자체로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언젠가는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부와 명예와 건강도 때가 되면 매몰차게 떠난다. 내가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날도 그리 길지 않다. 여기까지만 예를 들어도 가슴 한구석에 ‘무상하다!’는 감정이 피어오를 것이다. 그렇다. 세상은 참으로 무상하다.

초기 경전에는 ‘무상無常’이라는 말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어떤 이론적인 설명도 없이 불쑥 나온다는 점이다. 초기 경전에서는 무상의 이유나 근거를 파고드는 일이 없다. 무상은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

부처님 당시 인도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에 크리샤 가우타미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해서 좀처럼 아기를 갖지 못하다가 겨우 아들 하나를 얻었다. 아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정상을 벗어나 지나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아들이 걸음마를 떼고 한창 재롱을 부리던 나이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우타미는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사위성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친 듯이 외쳤다. “누가 이 아이를 살려 낼 약이 없습니까?” 아이의 시신은 부패하기 시작하여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이를 끌어안고 내려놓지 못했다.

어제까지 살아 있던 사랑하는 아들이 오늘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사랑하는 아들과의 이별. 결코 원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피할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무상한 세상의 한 단면이다. 어머니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부패하는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외친다. “이 아이를 살려 낼 약이 없습니까?” 이 외침은 무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절규다. 도대체 이 무상한 세계를 초월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다시 가우타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몇 날 며칠이 지났지만 약을 지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인이여, 내가 그 약을 지어 주겠노라.” 그렇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석가모니였다.

석가모니는 가우타미에게 약의 원료가 되는 겨자씨를 얻어 오라고 했다. 겨자씨는 흔한 조미료였기 때문에 어느 집에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죽은 자가 한 사람도 없는 집에서 얻어 와야 한다고 했다. 

가우타미는 사위성 골목골목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었다. “당신 집에는 죽은 사람이 없습니까?” 정신 나간 듯 이집 저집 찾아다녔지만 가까운 사람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적이 없는 집은 한 곳도 없었다. 

빈손으로 돌아온 가우타미에게 석가모니가 물었다.

“가우타미여, 아직도 겨자씨가 필요하느냐?” 

가우타미는 말했다.

“아닙니다. 이제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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