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악업의 세계,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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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악업의 세계, 지옥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7.0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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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옥천사 <시왕도>

창세기에 따르면, 아담에게 부여된 첫 번째 과제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자연은 처음부터 이름표를 달고 나오지 않았기에, 마음대로 자연을 분류하고 그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면 대단히 편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먼저 다양한 동물 집단 사이에 ‘정신적으로 경계를 긋는 일’을 시작했다.  
- 켄 윌버의 『무경계No Boundary』

광대무변하고 신비한 공간 전체를 ‘하늘’이라는 단순한 용어로 조작하여 다룰 수 있다는 ‘힘’에 아담은 자만했다. 현실 있는 그대로의 대상 자체를 다루는 대신, 이를 머릿속에서 규정하여 지배하려 했다. 그는 가히 마술적인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 삶은 대체로 ‘경계’를 설정하는 일에 모두 쓰이고 있다. 이제 아담은 다소 건방져졌다. 차라리 손대지 않고 놓아두어야 하는 지점까지 경계를 연장했고, 그 너머 ‘지식’을 얻기 시작했다. 이런 건방진 행동은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지식의 나무’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아담이 선과 악의 대립을 인식하자, 즉 결정적인 경계를 설정하자 아담 자신의 세계가 산산조각 나 버렸다. 아담이 죄를 짓자, 그가 창조하려고 그토록 애썼던 대립의 세계 전체가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고통과 쾌락, 선과 악, 삶과 죽음, 노동과 유희 등 갈등하는 대립 전체가 전 인류를 급습해 왔다. (필자 편집인용)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이득이 되는가 안 되는가’, ‘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그만둬야 하는가 계속 해야 하는가’ 등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그런데 머릿속이 아무리 복잡해 봤자 자연은 여여如如하게 돌아간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 잘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불안 속에 자꾸만 위태로운 선택을 종용하게 된다. 너와 나 사이에 경계를 긋고 또 긋다가, 결국은 자신이 그 경계 속에 꼼짝 못하게 갇혀 버리게 된다.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손꼽히는 켄 윌버는 그의 유명한 저서 『무경계』에서 “어떤 바보가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을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말’을 양날의 칼로 규정한다.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그것’은 ‘그것이 아닌 것’과 바로 대립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를 ‘강소연’으로 규정하면, ‘강소연이 아닌 것’과 자동적으로 대립이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세상과 투쟁을 하게 된다.

| 분별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법
문제는 이렇게 그어버린 ‘경계’가 ‘실재하는 것’으로 철석같이 믿어버리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계는 바로 우리의 ‘전쟁터’가 된다. 우리는 매일매일 스스로 만든 경계 속에서 치열하게 전쟁하고 있다. 이렇게 전쟁하는 한, 우리의 삶은 지옥일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는, 그러니 ‘분별’이라는 양날의 검을 놓으라고 한다. 상대도 찌르고 자신도 찌르는 의식의 칼을 놓아라, 여태껏 분별과 경계의 탑으로 쌓아올린 ‘나’도 놓으라 한다. 『유마경』에는 ‘분별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법法’, 이것이 바로 ‘부처’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가 쌓아올린 신념과 사회적 통념, 즉 어리석음에 눈 가려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힌다. 그런데 세세생생 쌓아온 이 무명의 힘, 전도몽상(뒤집힌 망상)의 힘은 결코 만만치 않다. 너와 나의 살벌한 대립과 갈등의 경계는 급기야 ‘지옥’이라는 세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 우리가 지은 악업이 만들어낸 곳, 지옥 
그녀는 홀연히 자신이 어느 바닷가에 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바닷물은 펄펄 끓고 있었고, 그 가운데 사나운 짐승들이 바다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남녀들을 잡아 뜯어 먹는 것이었다. … 고통 받는 형상이 천만 가지인지라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이 물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끓고 있으며, 많고 많은 저 사람들은 어떤 죄인이며, 저 많은 사나운 짐승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 『지장보살본원경』(발췌인용)

어머니가 죽어 어디로 갔는지, 바라문의 딸(지장보살의 전신)이 무독귀왕●에게 물으니, 그녀의 눈앞에 불바다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이 어디냐 물으니, “인간세상에서 나쁜 짓을 하다 죽은 중생이 49일이 지나도록 그를 위해 공덕을 지어주는 이가 없거나, 살아생전 착한 인연을 지은 것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본래 지은 업[本業]대로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자연히 이 바다를 먼저 건너야 합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두 개의 바다를 더 건너야 하며, 가면 갈수록 고통은 배가 된다. 합하여 총 세 바다를 건너게 되는데, 이는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세 가지 업 때문에 스스로 받는 것이라 한다. 이름 하여 세 가지 ‘업의 바다[業海]’이다. 
명이 다해 죽을 때 육신을 벗고 노출되는 세계는 바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업의 세계라고 한다.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지은, 즉 3업三業(또는 3악업三惡業)으로 지은 업의 바다에 도리 없이 표류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지은 업에 대해 살아생전 응보를 받는 것을 ‘삼재’라고 한다. 9년 주기로 돌아온다 하니, 자신이 9년 동안 지은 업이 드디어 밀물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와 3년간 들삼재, 눌삼재, 날삼재의 형태로 머물다 간다는 민간신앙이다. 그런데 죽어서 역시 업의 응보는 피치 못할 운명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지은 습관의 에너지 그대로 그 힘에 떠밀려 가게 되는 것이다. 지옥은 이런 3업의 바다 속에 있는데, 먼저 큰 지옥이 열여덟 개이고, 이는 다시 오백, 다시 천백으로 분파하여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옥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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