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훗 대탑 발견 당시의 모습. 현재는 꼴까타의 인도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돈황석굴. 돈황석굴은 인도문화가 중국으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으로 동서문화의 교류 역할을 해왔다.
돈황敦煌은 366년부터 서하가 원나라에 멸망한 13세기까지 거대한 불교 중심지로서,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건너온 스님들과 포교사들이 머문 주요도시였다. 그 중심지는 다름 아닌 돈황석굴이었다. 돈황석굴은 4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조성된 석굴로 시대에 따른 불교미술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불교미술의 보고寶庫이다(그림1).
그렇다면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은 어떤 모습이었고, 불교의 전파와 함께 어떠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걸까? 불교미술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불탑佛塔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탑은 부처님이나 덕 높은 스님들의 몸에서 나온 뼈인 사리를 넣은 일종의 무덤을 뜻한다. 이러한 탑은 시대를 거쳐 차츰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는 공덕 사상과, 탑을 도는 수행만 해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불교의 사상 때문에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부처님의 사리는 도나(Dona) 존자의 중재로 여덟으로 공평하게 나누어졌다. 사리를 넣었던 함은 도나 존자에게, 사리 분배가 끝난 후 도착한 핍팔리 숲에 사는 모리야족은 화장터의 재를 가져갔다. 이렇게 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여덟 기의 근본팔탑根本八塔과 병을 넣은 병탑甁塔, 재를 넣은 탄탑炭塔 등 10기의 탑이 인도에 최초로 세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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