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으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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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08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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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고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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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고영훈

 
우연히 고영훈 작가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캔버스에 백자 하나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백자는 깨끗하지 않았다. 작은 흠집 하나, 언제 묻었는지 모를 흔적까지도 묘사되어 있었다. 막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월의 때가 묻은 오래된 백자였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그림이었다. 극사실주의는 대상에 대한 정밀한 묘사를 통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그 답을 얻고자 고영훈 작가를 찾았다.
 
| 있음과 없음

제주도 출신인 고영훈 작가에게 돌은 가장 익숙한 물체였다. 어렸을 때 지천에 널린 것이 돌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 때문일까. 1970년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천착한 대상도 돌이었다. 단순히 돌을 묘사해내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무엇을 추출하는 작업이었다. 그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돌에 풍부한 의미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돌은 흔하면서도 귀한 존재였다. 흔하게 땅에 굴러다니지만, 집을 지을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존재다.

그의 그림에서 돌은 허공을 부유하기도 하고 땅에 그림자를 박고 있기도 한다. 그리고 이 하나 하나의 돌은 모두 사람이나 존재의 파편을 상징한다. 결국 이 극사실주의 화가가 그린 돌은 진짜와 가짜의 문제가 아닌,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 보통 극사실주의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허구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뚜렷이 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 오브제들은 하나의 상징물로서 기능한다. 그가 ‘돌의 작가’로 불리는 건 돌을 많이 그려서이기도 하지만 돌로부터 많은 상징들을 추출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존재에 대한 탐구는 세월이 흐르며 그 대상이 다양해졌다. 돌에 더해 새로운 오브제들이 추가되기 시작했는데, 냄비, 헌신짝, 깃털, 새, 책 등은 당시 그의 상황을 대변하는 상징물이었다. 특히 결혼이 그의 작품세계에 미친 영향은 컸다. 결혼은 현실이었고, 그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쳐야 했다. 냄비나 헌신짝이 생존에 대한 욕구를 상징했다면, 깃털은 영혼의 파편이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오브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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