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나에게 ‘숫자 1의 의미’를 묻는 글을 써달라는 청탁 전화가 왔다. 그런데 난 어쩐 일인지 나의 무능함을 핑계로 대지 못하고 그만 응낙해버리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한동안 글을 쓸 생각도 제대로 하지 않고, 숫자치인 내가 왜 주저하지 않고 응낙했을까를 더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그 까닭을 흐릿하게 알 것 같다. 그 앎이 지금 자판을 두드려 커서를 앞으로 움직이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의 숫자에 대한 공포는 1로부터 멀어질수록 비례하여 커진다. 그러다 생득적 경험의 영역이 아닌 관념과 추상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단위까지 멀어지면 고소공포증 같은 아찔한 어지러움이 찾아오고 그것을 더구나 복잡한 방정식으로 분할, 합병해버리면 공황장애의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이런 위인이니, 나에게 1은 ‘숫자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 그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숫자의 세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