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쇄적인 미소를 머금은 석불과 언어도단을 즐기다
상태바
뇌쇄적인 미소를 머금은 석불과 언어도단을 즐기다
  • 관리자
  • 승인 2009.12.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여행 / 촉각의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는 서울 도봉산 만장봉 석굴암
▲ 신선대에서 바라본 선인봉. 저 봉우리 뒤편 아래 작고 소박하고 더 내놓을 것이 없어 더 정겨운 절집, 석굴암이 있다.

그 석불을 내가 언제 또 만나러 갈 수 있을까. 아니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얼마나 머지않은 날에 또 그 석불의 미소를 보러 갈 수 있을까. 그 미소 앞에서 그 노래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촉각의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을까.

비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세 번 연기한 끝에 도봉산 만장봉 석굴암에 오르는 날 역시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천둥 번개도 한몫 단단히 했다. 그러나 원고 마감날짜가 코앞에 다가왔으므로 이번에도 비가 온다고 더 이상 취재를 미룰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는가. 천둥 번개와 빗줄기를 뚫고 도봉산 만장봉 석굴암에 오르는 내내 나는 참 행복했다. 떡갈나무 잎이 자지러지게 내리는 비와 야단법석(野壇法席) 같은 천둥 번개가 답답한 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비와 나는 궁합이 참 잘 맞는다. 비 내리는 밤 아무도 몰래 창문을 열어놓고 내가 비와 합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첫 사랑을 잃고 열병이 났을 때도 나는 빗속을 거닐며 열을 식혔고,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도 빗속을 걸으며 스스로의 위안과 평화를 찾았으며, 아내와 지독한 싸움을 벌인 뒤에도 빗속을 걸으며 내일의 희망을 곱씹었다. 그때마다 비는 세살 먹은 아이를 쓰다듬어주듯 내 이마를 쓸어주고 내 가슴을 씻어주고 내 발바닥을 위무해주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비를 길동무 삼아 혼자 오른 도봉산 만장봉 석굴암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했다. 도봉산 만장봉 석굴암은 도봉산 팔부 능선쯤에 있는 경찰산악구조대 뒤편 한 시 방향 쪽에 제비둥지처럼 걸려 있었다. 작고 아담한 것이 정말 내 마음에 꼭 드는 절집이었다.

작고 아담해서 더 순정한 절집

생래적으로 나는 큰 절집보다는 만장봉 석굴암처럼 아담하고 작은 절집을 좋아한다. 큰 절집에서는 치장과 사치의 냄새가 나지만 작고 아담한 절집에서는 순결과 순정과 무욕의 향기가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경찰산악구조대 뒤편에서부터 135개의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드디어 석굴암이 나타났다. 돌계단에도 혹시 어떤 상징이 들어 있을까 해서 하나하나 세며 올라갔지만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그 135개의 돌계단 숫자를 세며 오르는 동안 나는 아무런 잡생각도 하지 않는 선정의 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만장봉 석굴암이 남몰래 내포하고 있는 첫 번째 상징이 아닐까.

이윽고 석굴암. 조그만 동굴에 그보다 몇 십 배나 조그만 석불 한 분이 입가에 뇌쇄적인 웃음을 머금은 채 눈을 지긋하게 뜨고 있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안에 머물며 그 석불과 무언어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를 즐기고 싶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바로 ‘내가 언제 또 이 석불을 만나러 올 수 있을까. 얼마나 머지않은 날에 이 석불과 다시 언어도단의 여백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