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봉종밀 선사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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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종밀 선사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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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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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단[17]-도서(都序)

     규봉종밀 선사의 전기

   규봉종밀(이하 종밀이라 약칭) 선사는 당(唐)의 덕종(德宗) 건중(建中) 원년(780)에 과주 서윤현[현재의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의 동쪽]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 그의 스승인 화엄종의 증관대사 청량(澄觀大師淸凉)은 43세였으며, 천태종의 담연(湛然)은 70세였다. 그리고 하택신회(荷澤神會)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종밀은 천부적인 재질을 온 몸에 듬뿍 받고서 태어났는데, 7세에서 10여 년간은 유교의 학문을 배우고 이어서 18세에서 약 3년간은 재가불자로서 불교의 경론을 배웠다. 그 후 다시 23세로부터 2년간은 사천성 서쪽 연안에 있는 수주(遂州)에 건너가 의학원(義學院)에서 유학을 연구했다.

   25세 되던 해 서천(西川)으로부터 수주로 가끔 교화하러 나오던 도원(道圓) 스님을 만나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마침내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면 도원 스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종밀의 말에 따르면 도원 스님의 얻은바 법은 제6조 혜능 대사의 종지라고 하여 육조혜능 대사의 남돈선(南頓禪)을 계승한 인물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종밀이 득도하여 아직 구족계를 받지 않고 사미(沙彌)로 있을 무렵, 우연히 재(齋)에 초대를 받아 어느 단월(檀越)의 집에 이르러 독경을 하게 되었는데「원각경(圓覺經)」이었다. 경전을 받아들고 겨우 두어 페이지를 읽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쇄락하고 경쾌하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종밀은 특히「원각경」의 연구에 많은 힘을 기울였는데 종밀과「원각경」과의 관계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 후 그는 여러 해 동안「원각경」과 함께「원각경」의 주소(注疏)인「유각법사소(惟慤法師疏)」와「오실법사소(悟實法師疏)」,「견지법사소(堅志法師疏)」,「도전법사소(道詮法師疏)」를 입수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는「원각경」을 가리켜,

  『법성(法性) · 법상(法相) · 파상(破相), 즉 성(性) · 상(相) · 공(空) 3종(宗)의 경론과 남북돈점(南北頓漸)의 선종과 화엄원교(華嚴圓敎)의 교리를 두루 겸비한 위대한 경전이다.』

라고 극구 찬양하였다.「원각경」은 실로「제2의 화엄」이라할 만큼 방대한 의미를 두루 포함하고 있는 경전이다.

   원화(元和) 3년(808), 도원 화상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종밀은 스승의 명에 따라 문하를 하직하고 촉강(蜀江)의 남쪽 연안에 토굴을 짓고 주석하는 형남(荊南)을 찾아 배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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