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 신라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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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 신라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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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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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20)

  속성이 김씨이며 시부 이찬의 손자(俗姓金 詩賦 伊食之孫也)였다고 전하는 것을 미루어 비록 당시에 속성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진평왕(眞平王)때의 고승 안함(安含)법사는 왕족 즉 진골(眞骨)출신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언제인지는 자세치 않으나 일찍이 출가한 그는 불법(佛法)을 더욱 깊이 공부하기 위하여 여러 지방으로 행각할 뜻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평왕 22년(600)에 그의 나이 22세 때에 동지승(同志僧) 혜숙(惠宿)스님과 함께 구법(求法)의 뜻을 세워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다.

  혜숙법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 卷4 義解 5 二惠同塵 條)에 그 전기(傳記)가 들어 있는데 그 또한 진평왕 때의 고승으로서 생사를 자재(生死自在)하는 신이한 스님(神僧)으로 전해져 있다. 안함과 혜숙의 두 젊은 스님은 서로 뜻을 같이하는 절친한 도반(道伴)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흥불입국(興佛立國)의 이념으로 새롭게 중국 천하를 통일한 불교국 수(隋)나라에 가서 불법을 배우고자 함께 길을 나섰던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들은 그 구법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오게 되었다. 그들이 탄 배가 넓은 바다로 채 나아가기도 전에 심한 풍랑을 만나 도저히 항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라에서 중국으로 간다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비록 풍랑으로 인해 첫 구법의 길이 실패로 돌아간다고 해도 젊은 안함스님의 뜻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중국으로 건너갈 기회를 기다렸다. 그 때 마침 조정에서는 중국에 가서 공부할 유능한 유학승을 물색하고 있었던 터라 안함법사는 거기에 뽑혀서 왕명으로 구법의 길에 오를 수가 있게 되었다.

  진평왕 23년(601)에 그는 나라의 사신과 함께 배를 타고 중국으로 향하였다. 동지승 혜숙과 함께 풍랑으로 도중에서 되돌아왔던 바로 그 이듬해에 그는 수나라에 도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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