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사상에서 唯識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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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사상에서 唯識에로
  • 관리자
  • 승인 2009.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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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논단

  1 空사상에 숨은 것

 여기서는 공(空)사상이 유식(唯識) 불교에 있어서 어떤 발전을 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공사상은 반야경에 분명히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고 말씀되어 있다. 반야경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보이는 것이다. 모든 법의 실상은 <심행(心行)도 언어도 길이 끊었다.>라 할 것이다. 심행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하는 것, 마음의 작용을 말하는데 모든 법의 실상은 마음으로써 생각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제법의 실상은 마음에서 스스로 할 것이요, 말로 전해들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진실의 세계를 적극적인 말로 하지 못했는데 이 점이 공사상이 품은 위험성이다. 그것은 공을 허무의 뜻으로 해석하는 위험성이다. 반야경에서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뜻에서 유식사상이 튀어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유식사상에 와서는 저절로 공사상이 사뭇 변화되어 온다.

  2 空사상의 적극적인 면

 그러면 공의 특성을 조금더 말해보겠다. 우선 공은 우리들이 잡을 수 없는 성격이 있다. 모든것은 유동적이므로 그것을 잡아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는 성격이다. 이것을 일체개공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자기 것인 듯 생각하고 있는 것들도 실지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므로 우리들은 모든것에 애착을 가지면 안된다는 말이 나온다. 집착을 가지면 거기에 고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서 적극적으로 무집착의 경지가 개척되어 간다. 이것이 공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공의 실천적인 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집착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들의 자아(自我)에서도 말할 수 있다. 자아는 항상 변해가는 것이므로 그 반면에 자아를 반성하면 자아는 변치 않는 것도 있다. 태어났을 때의 자아는 지금의 자기라고 할 수 있듯이 자기 동일의 자아가 떠 올라서 자기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자기를 변해가고자 하는, 지금의 자기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보다 향상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있다. 학문이나 수행을 하여 자기 개조를 하자는 것이 역시 자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자기 동일이라는 이해와, 또 하나는 자기가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다는 이해, 이 두 가지가 있어서 자기는 끊임없이 바뀌어져 간다고 이해하게 된다. 바뀌어가는 자기라면 잡을 수도 없다. 잡고자 하여도 변하므로. 그런 자기를 보다 좋게 개조해 가도록 자기를 잡아간다. 이 점이 공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하겠다. 실천적인 공의 이해라고 하는 것은 자기에 집착하지 않는 이 점이다. 거기서 적극적인 노력이 있게 된다. 바라밀에는 완성이라는 것이 있지만 또한 한 곳에 정체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한으로 향상해가는 의미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공이라는 말에는 매개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매개성이라 하는 것은 서로 바뀔 수 있는 여유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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