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불교의 새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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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교의 새 길을 열다
  • 관리자
  • 승인 2009.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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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불교단체 탐방 - 참여불교재가연대
▲ 불교바로세우기 재가연대 창립총회

2007년 여름, 우리 사회 언론의 주요 관심은 조계종립 동국대학교에서의 신정 아씨 학력 위조 사건, 주지 교체를 둘러싸고 벌어진 제주도 관음사 폭력사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어 선교활동을 하던 샘물교회 선교사들의 피랍 사건 등에 쏠려있었다. 모두 종교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이즈음 한 신문은 “속(俗)이 성(聖)을 걱정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우리 사회의 종교의 타락상이 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그해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편집상을 수상했다. 제목 한 줄이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평가였다.

불교에서야 성과 속, 너와 나,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 짓는 것을 경계하지만, 진리의 세계가 아닌 사바의 세계에서 성속은 엄연히 구분된다. 그리고 아직도 ‘성(종교)’은 성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다. 여전히 ‘성’은 ‘속’의 걱정거리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속된 스님들이 상당히 껄끄럽게 여기는 단체다. 자신들의 부패행위가 지적당하고, 퇴출 압력을 받으니 미워할 만하다. 그러나 출가정신을 늘 되새기며 바른 불교의 길을 가는 스님들이나 다수 불자들은 재가연대를 응원한다. 고발과 비판자는 늘 이렇게 극단의 평가를 받는가 보다.

재가연대가 창립되던 당시, 조계종에는 폭력이 횡행했다. 1998년, 1999년은 조계종의 그런 모습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시기였다.

1998년은 그해 11월에 총무원장 선거가 예정된 해였다. 하지만 선거는 6월께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다. 당시 총무원장 월주 스님은 재임을 노렸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자 쟁점은 3임이었다. 조계종의 모든 행위를 규정하는 종헌·종법은 총무원장의 3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월주 스님은 1980년과 1994년에 치러진 선거에서 총무원장으로 당선됐으므로 또 출마하는 것은 3임 제한 규정에 저촉된다는 것이 월주 스님의 경쟁자였던 월탄 스님 측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월주 스님 측은 1980년에 한 차례 당선되긴 했지만 군부의 10.27법난에 의해 강제로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났으므로, 그때의 일은 3임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맞섰다. 이러한 대립은 당시 월하 종정의 지지를 받던 월탄 스님 측 스님들이 1998년 10월에 총무원청사를 강제로 점거하는 사태로 비화되었고, 결국은 서로 치고받는 폭력사태로까지 이어졌다.

1999년에는 98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총무원장에 당선된 고산 스님에 대한 당선무효가처분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 청사를 놓고 지키고 빼앗으려는 물리적 충돌이 또 발생했다. 조계종은 연이어 터진 폭력사태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니, 수행·교육·포교니 하는 것들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가불자들은 재가회의, 재가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우선 폭력 종식을 목표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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