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백 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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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백 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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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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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불교사12

법화삼매를 백제에 전한 현광(玄光)스님

백제는 고구려 다음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 제 15대 침류왕(枕流王) 원년(384)에 인도 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에 의하여 비로소 받아들인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받아들임의 통로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 대륙이었다. 그 후 백제 불교는 바다를 사이에 둔 중국(특히 남쪽 중국)의 불교문화와 많은 접촉의 기회가 있었고, 또 그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중국의 남쪽 지방에 불교가 크게 퍼지고 불교문화의 꽃이 활짝 피기 시작하였던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남조(南朝) 여러 나라의 불교가 백제에 끼친 바는 매우 컸던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한 역사 사실로 미루어 백제의 많은 불교인들이 불법을 배우기 위하여 중국으로 건너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남아 전하는 백제 불교의 자료가 너무 없어서 그때의 역사 사실을 바르게 알 도리가 없다.

그와 아울러 백제에서의 중국 구법승(求法僧)에 대한 사료(史料)도 너무나 희소(稀少)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 구체적인 백제 구법승의 전기(傳記)가 전하는 것으로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고승이 바로 현광(玄光)스님이다.

웅주(態州) 옹산(翁山)사람인 현광스님이 언제 어느 절에서 출가하였으며, 어느 해에 중국으로 건너갔는지에 대한 것 또한 전혀 알 수가 없다.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간 현광스님은 당시 남북조시대 남조였던 진(陳)나라의 남악(南岳) 형산(衡山)에 들어갔다. 물론 처음 중국에 도착한 그는 여러 지방의 명승대찰(名勝大刹)과 선지식(善知識)들을 두루 찾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남악으로 들어간 데에는 중요한 까닭이 있었다.

당시 남악 형산에는 혜사(慧思)라는 유명한 선지식이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혜사(524~577)선사는 15세에 출가한 이래 여러 대승경전을 읽었으며. 20세가 되어 사방으로 유행(流行)하여 여러 대덕을 방문하고 오로지 선관(禪觀)을 닦았다.

북제(北齊)의 혜문(慧文)선사에게로 가서 일심삼관(一心三關)의 심요(心要)를 받은 다음 법화삼매(法華三昧)를 증득하였다. 554년에 대소산(大蘇山)으로 들어갔을 때 그에게 배움을 구하는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며, 568년에 40여명의 제자와 함께 남악으로 가서 10년을 머물다가 577년에 64세(또는 63세)로 입적하였다.

혜사선사에게는 법화경 법화경 안락행의(法華經安樂行義) . 제법무정삼매법문(諸法無靜三昧法門) . 입서원문(立誓願文) . 수자의삼매(隨自意三昧) . 수보살계의(授菩薩戒儀) . 대승지관법문(大乘止觀法門)등의 저술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들 저술의 제목만으로도 그가 실천 수행 위주의 대승불교인임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의 삼매적이고 지관(止觀)적인 실천 법문을 이어받아서 불설일대시교(佛說一代時敎)를 외형과 내용면에서 정리하고, 교리와 실천의 두 문〈敎觀二門〉을 조직 성립시켜서, 천태종(天台宗)을 이룩한 천태지자대사(智者大師) 지의(智顗,538~597)는 바로 그 제자였던 것이다. 물론 지자대사가 천태교관(天台敎觀)을 확립시킨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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