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소중히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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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소중히 할 때
  • 관리자
  • 승인 200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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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내 이름을 걸고

우리는 최근 새로운(?)유명인사의 이름을 신문지상이나 TV등 매스컴에서 자주 접한다. 사회 각분야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인사나 정치지도자의 이름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이 작업복을 입고 때로는 턱 수염까지 기른 노동현장의 얼굴들을 접할 때 신선한 충격을 느낀다. 이같은 충격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숨죽여 왔던, 억눌려 왔던 바램과 소망이 민주화의 열풍속에서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덩달아 노동현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때문만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산업노동자의 목소리가 참다운 인간화를 위해 생생하게 살아서 메아리치기 때문이다. 부화뇌동이 아니라 참다운 자기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4.19 이후 그리고 ‘80년도에 전시대의 억눌린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목소리가 분출된 것을 혼란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 외양적으로 볼때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정은 모두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제몫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사회전체가 이것을 올바른 법리에 따라 수용하고 해소해 나아가는 것이다. 질서도 마찬가지다. 한 줄로 서는 것이 질서가 아니라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그리고 자식들은 자식으로서 제몫을 다할 때 건전한 가정이듯이, 군인은 국5방에 전념하고 정치인은 올바른 정치를 위해 힘쓰고 공무원은 공정하고 효율적인 행정을 위해 노력할 때 참다운 질서가 형성된다. 자기 이외의 것을 넘볼 때 질서는 파괴된다. 안정과 질서가 올림픽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참다운 삶을 위해서도 진정으로 필요하다. 아닐까? 얼마전 우리는 한창 학교에서 공부하며 건강하게 자라야 할 두 소년의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는 공장일이 고달파 공장에 불을 놓은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수은 중독으로, 정말이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공동의 책임을 깊이 깨우치게 하고 꽃상여타고 떠난 문 송연 군의 이야기이다.

가정의 빈곤을 이유로 배움을 포기해야 하는 이들의 아픔이 그들만의 고통일 수는 없다. 그들에게만 책임지울 수 없는 일이다.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죄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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