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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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소서
  • 관리자
  • 승인 200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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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내 이름을 걸고

이 지구 위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모두는 각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편의상 그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해 붙인 이름, 가정에서의 역할에 따른 이름 그리고 그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 주는 이름, 그러니까 사람들은 서너가지 이상의 이름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바로 그 사람이 해야할 일을 가리킨다. 아버지란 이름의 할 일, 어머니란 이름의 할 일, 아들이란 이름의 할 일, ... 그리고 종교인, 사장, 교수, 정치가, 상인, 노동자, 농민, 어부...그 이름에 따라 각각 다른 업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기 이름에 대한 임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개라는 이름은 그저 상표와 같은 역할만 할 뿐, 특별히 그 이름에 부여된 일은 없다도 생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곧잘 발생한다. 신문의 한면을 크게 장식하는 부정 사건들의 이름을 보면 그들은 가정에서의 가장이란 이름을 위해서는 분명 큰 일을 했고, 그가 몸담고 있는 직업의 이름을 위해서도 큰 일을 한 것이 붐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자신의 이름에 대한 몫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얼룩지게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 거정에서는 막내딸이라는 이름, 직장에서는 포교사라는 이름과 작가라는 이름. 난 그 이름들에 맞는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자식을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책임감,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에 대한 의무감, 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능하면 좋은 글을 쓰겠다는 의욕으로 가득차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름들을 다 벗어버린 그야말로 속살이 그대로 다 드러난 방귀희란 이름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니 만감이 오간다. 내 이름은 그저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 줄 뿐이지. 내 이름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지 않다. 생명이 없는 이름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름이 죽어있다면 이 몸뚱이 역시 생명력이 없는 것이 되리라. 난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해본다. 내 이름에 생명을 심어야겠다고. 여러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해 준다면 그 생명은 영원하겠지만 그것은 내겐 너무 과분하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히 눈길을 끌만큼 훌륭하지 않으면서도 그 역할에서, 그 자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살아있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딸로서 충실하면 내 이름에 ‘자랑스런’이란 수식어가 붙게될 것이고 포교사로서의 이름에 헌신할 때 나의 이름을 찾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나의 작품이 깨끗하고 순수할 때 독자들은 분명 나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난 그 자리에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아니고 없으면 금방 자리가 나는 이름이 되기를 원한다. 찬란한 이름보다는 깨끗한 이름, 그래서 사람들이 따스하게 불러줄 수 있는 이름이 되고 싶다. 내가 불자인 것을 알고 나를 향해 약간은 비양거리는 어투로, ‘너희 요즘 왜 싸우니?’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나는 발끈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왜 너희야?’ 하고 반문을 한다. 불교인 한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불교 전체의 잘못으로 왜곡되는 현실이 서글프고 가슴이 아프다. 부처님 법과 인연이 없는데도 억지로 붙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불협화음이 너무도 크게 울리고, 너무도 길게 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불협화음만을 기억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끄러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의 이름을 걸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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