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ㅡ백제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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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ㅡ백제편ㅡ
  • 관리자
  • 승인 2009.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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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 11

 백제 불교에 있어서 해외에 나가 구법(求法) 활동한 스님으로는 제일 먼저 겸익(謙益) 대사를 들 수가 있다. 겸익스님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고 또 어느 절에서 출가하였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가 인도에서 구법하고 귀국한 해가 백제의 성왕(聖王) 4년(526)으로 되어있을 뿐, 언제 어느 경로(經路)로 해서 인도에 갔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바닷길로 배를 타고 가서 육지에 올라 중인도의 상가나 대율사에 도착하였다〈航海以轉至中印度常伽那大律寺〉는 기록으로 보아, 겸익스님이 백제어서 배를 타고 인도를 향해 갔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남쪽 바다로 해서 곧장 바닷길로만 인도에 이르렀던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남해안으로 가서 그 곳 상선(商船)을 타고 중국의 구법승(求法僧)들이 왕래하였던 항로(航路)를 따라서 갔던지를 알 수가 없다.

 인도에 도착한 겸익스님은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과 성장 출가지였던 카필라성과 그리고 성도지인 부다가야와 최초 설법처였던 녹야원 및 열반지인 쿠시나가라 등의 불적성지(佛跡聖地)를 두루 참배하였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큰 사원과 훌륭한 불교학자도 널리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당시 인도의 율학(律學) 중심지였던 중인도(中印度)의 상가나(常伽那) 절에 갔던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상가나 절을 대율사(大律寺)라고 하는 것은 그 절이 계율학(戒律學)을 전공하는 큰 사원이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한다면 율학 전공의 상가나 불교대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당시의 인도 큰 절은 불교의 학문을 닦는 중심도량(道場)이었으므로 지금의 대학과 같다. 상가나는 절 이름이므로 상가나사(常伽那寺)가 물론 바른 명칭이다. 대율사(大律寺)는 그 절의 성격, 즉 전공 분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가나 큰 절에서 백제의 구법승 겸익스님은 배움을 찾고자 자리를 정하였다. 율학을 전공하는 그 곳 상가나사에서 그는 먼저 범문(梵文)을 익혔다. 불교의 삼장(三藏 ; 經 · 律 · 論)을 부처님의 나라인 인도에서 공부하자면 그 기초가 되는 글부터 익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거기에서 5년동안 인도의 말과 글을 완전히 익혔다.

 5년간의 어학(語學)을 마친 그는 비로소 전공인 율학을 시작하였다. 당시의 인도불교는 대승불교(大乘佛敎)시대로서 대승불교가 일어난 지는 상당한 세월이 지난 뒤였다. 그러나 소승(小乘)이라고 불리우던 부파불교(部派佛敎)는 5,6세기의 인도 불교계에 아직도 그 세력이 남아 있었다. 특히 율학에 있어서는 소승불교가 절대적인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므로 겸익스님이 공부한 율(律)도 물론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교수행자 개인의 종교적 규범(規範)을 계(戒)라고 한다면, 율(律)은 신앙적 단체생활의 교단(敎團)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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