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여사의 신년계획
상태바
강여사의 신년계획
  • 관리자
  • 승인 2009.08.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작소설

시간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강여사는 벽에 새로 걸어 놓은 달력을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혼자 미소를 지었다. 여학교 때의 일이 생각나서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고 생각되는데 방과 후 교실에 남은 강여사와 친구는 이 문제를 가지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논쟁을 하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강여사는 골목 어귀까지 마중을 나와서 계시던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여학생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늦게 돌아다닌다는 꾸지람이었다.

 그때 강여사는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으며 시간은 정말 있는 것인가? 하고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는 시간이 없다고 우겼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없다고 우겼던 강여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녀에서 중년부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깜깜한 교실에서 친구와 논쟁을 벌였던 그때의 자기보다도 더 큰 딸을 두고 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은 정말 있는 모양이군.’ 달력을 보고 있던 강여사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인간은 자기가 그것을 부정하려고 들었던 것이 무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때는 영원이라는 문제에 탐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력에서 몸을 돌린 강여사는 준비한 만두속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떡도 썰어놓고 전도 부쳐놨으니 만두만 빚어지면 저녁하기 전에 얼른 혜영이 집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여사는 재빠르게 손을 놀려 만두를 빚으면서 머릿속으로는 혜영이네 집 아이들을 떠올렸다.

 엄마를 잃고 처음 맞는 설이니 아이들 심정이 어떠할까 싶었다.

 아이들 모습을 떠올리고 있던 강여사는 만두 빚던 손으로 눈가를 눌러 눈물을 닦아냈다. 입이 뭉턱하고 턱이마가 약간 뛰어나온 막내딸 민아 얼굴을 떠올리자 강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푹 쏟아졌다.

 암 선고를 받고 육개월 정도 투병생활을 하던 혜영은 결국 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혜영이 간지가 두달 밖에 안 되니 아이들이고 남편이고 그 심정이 말이 아닐 것이다.

 혜영이네뿐 아니라 숙희도 마음이 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모회사의 상무로 있을 때에는 명절만 되면 선물도 많이 들어오고 인사를 오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그러나 그 남편이 가버리자 그녀의 집은 쓸쓸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명절이 돼도 누구하나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없었고 선물꾸러미 하나 들고 오는 사람이 없었다. 숙희는 남편을 잃은 허전함과 야박한 세상인심에 함께 상처를 받고 있었다.

 강여사는 시간이 되면 해지기 전에 숙희네 집도 한번 들여다봐주고 싶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