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聖제(사성제)와 바른實踐(실천)
상태바
四聖제(사성제)와 바른實踐(실천)
  • 관리자
  • 승인 2009.08.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해외논단

 부처님은 부다가야에서 대각을 이루시고 녹야원으로 가셨다. 거기서 옛친구 5비구에게 설볍하신 법문이 사성제(四聖제) 즉 4개의 진리다. 이 진리라는 말은 범어로 사탸(Satya)인데 Sat는 있다는 뜻이고 사타란 진실로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원시불교는 다른 철학학설과는 달라서 어떤 형이상학설을 조직하려는 의도가 없다. 불교의 오랜 발전과정에서 논리학도 성립시켰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고 실천 철학적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즉 어떻게 살것이냐를 문제 삼는다. 따라서 그 진리관과 철저하게 실천적이다.

 2 고에서 해탈하는 길

 사성제 진리체계가 언제 성립하였는가, 항상 설해졌는가는 하나의 문제이다. 옛 게송을 보면 「우리의 몸은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졌다. 그 성립과 소멸을 관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분명히 사제 가운데 집멸(集滅)에 해당된다. 수행자의 말 가운데에도 『이몸을 구성하는 오온은 괴로움이다. 바르게 반성하라. 괴로움을 내는 것을 없애라. 이 세상에서 괴로움을 소멸시켜라.』하고 있다. 이것은 3개의 진리이다. 이윽고 4개의 진리가 정리되는데 첫째는 괴로운 것, 둘째는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 셋째는 괴로움을 완전히 없애는 경지, 넷째는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길이 된다. 여기의 괴로움이란 생리적 고통만이 아니다. 뜻데로 안되는 모두를 포함한다. 우리의 생존을 반성해 보면 매사가 좀체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고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원시불교에서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은 갈애(渴愛 Tanha)다. 어찌할 수 없는 집착이고 충동적인 것이 우리의 존재 뿌리에 있는 것이다. 탕하는 목마르다는 뜻이다. 목 말라 견딜 수 없을 때 아무 물에나 뛰어 든다. 이것은 충동적이다. 이충동적인 것을 억제하여 번뇌가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니로오다(Nirodha)라 한다. 니로오다는 억제한다는 뜻이다. 한문으로 변역할 때는 멸이라고 했다. 니로오다를 멸이라 한 것이 적당한지는 문제가 되나 번뇌의 작용을 없이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멸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 팔정도(八正道)이다. 팔정도를 실천하면 번뇌가 억제된다. 출가 수행자는 이렇게 실천하는 이렇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가 수행자는 다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다른 수행법이 필요하게 된다. 여기서 탑숭배라든가 부처님 경배, 수행자 경례 공양 그리고 가르침의 실천 등이 있게 된다.

 3 의학체계와 사성제

 사람은 나는 것도 고이고, 늙는 것도, 병드는 것도, 죽는 것도 고(苦)다. 다시 근심, 슬픔, 고통, 고뇌 모두 고다. 미운 사람 만나는 것도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것도 구해서 얻지 못하는 것도 모두 고다. 이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큰 문제이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